국내 시장 판도를 흔들어 놓은 르노코리아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그랑 콜레오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랑 콜레오스는 지난해 출시된 지 1년 만에 국내 누적 판매 5만대를 넘기며 수입·국산 대형 브랜드가 장악하던 중형 SUV 시장에 균열을 냈다. 올해 자동차안전도평가(KNCAP)에서 SUV 부문 최고점을 기록하고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AWAK)·한국자동차기자협회(KAJA) 평가에서도 상품성을 고루 인정받으며 ‘한국 소비자까지 설득한 하이브리드 SUV’라는 타이틀을 굳혔다.
소비자가 먼저 반응한 이유는 명확하다. 전동화 전환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속에서도 그랑 콜레오스는 ‘현실적 전동화’라는 해답을 제시했다. 전기차에 가까운 초기 응답성, 도심의 상당 구간을 전기모드로 주행하는 효율성, 그리고 오픈알(openR) 파노라마 스크린의 시원한 인터페이스까지 한국 소비자가 요구하는 ‘과하지 않은 전동화’ 조건을 치밀하게 충족한 것이다.
그랑 콜레오스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바로 ‘메이드 인 부산(Made in Busan)’이다. 르노그룹 내에서 최고 수준의 품질 평가를 받아온 부산공장은 인공지능(AI) 비전 검사, 셀프 피어싱 리벳(SPR)·플로어 드릴 스크루(FDS) 첨단 공법, 고강성 차체 구조 등 이미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는 제조 기술을 갖췄다.
특히 검사 공정에 AI 비전 시스템을 도입해 엔진룸 내부·하부 고정부품처럼 기존 육안 검사가 불가능했던 영역까지 자동 판독을 구현했다. 카메라 한 대가 넓은 면적을 검사하고 작업자가 직접 AI 모델을 설정할 수 있어 품질 관리가 ‘전문가 의존’에서 ‘시스템 체계’로 이동했다. 이로써 부산공장은 르노그룹 내 주요 품질 지표에서 1~2위를 꾸준히 기록하며 글로벌 공장 간 경쟁에서도 우위를 지켜내고 있다.
부산공장의 진화는 올해 한 단계 더 도약했다. 국내 자동차 기업 중 최초로 내연기관 생산라인을 전기차까지 조립할 수 있는 라인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감행한 것이다. 1월 한 달 동안 생산을 멈춰 세우고 하루 740명의 인력을 투입해 총 68개 설비를 다시 설계했다. 기존에도 한 라인에서 다차종 혼류 생산이 가능했지만, 이번 개편은 ‘미래차 시대의 혼류’를 전제로 한 국내 첫 시도다.
전기차는 내연기관보다 차체가 약 25% 무거워 공장 바닥부터 차량 이동 시스템까지 전면 재설계를 요구한다. 부산공장은 차체·도장공장의 신규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전기차 전용 섀시 행거와 작업 라인을 추가했다. 전기차 생산을 위한 구조적 체질개선이 단순한 설비 교체가 아니라 공장 전체의 체력을 다시 만드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생산 혁신의 결과는 그대로 수출 성과로 이어졌다. 그랑 콜레오스는 출시 초기 국내에서 먼저 신뢰를 얻은 뒤, 현재 총 24개국으로 수출 시장을 넓혔다. 중동·중남미뿐 아니라 아프리카까지 공급이 확장되며 글로벌 공략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모델의 판매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소비자가 인정한 품질은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증명이며 부산공장의 제조 역량이 글로벌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인이자, 한국 SUV 산업이 다시 세계 무대에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랑 콜레오스의 여정은 결국 한 모델의 성공담을 넘어 부산 제조업의 존재감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차를 단일 라인에서 소화하는 미래형 혼류 생산은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글로벌 생산지로서 부산이 갖는 설득력을 다시 증명한 사건이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부산에서 생산돼 24개국으로 확장된 K-SUV’라는 상징성은 지역 산업의 저력을 보여주고 향후 글로벌 전기차·하이브리드 공급망 협력에서도 부산의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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