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특권층은 달팽이 요리로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날로 치면 메인 요리에 앞서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전채)다. 애피타이저라는 말은 프랑스어 ‘식욕을 돋우는’이라는 뜻의 ‘아페티상’에서 유래했고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고물가와 맞물려 미국에서 ‘애피타이저 경제(Appetizer economy)’라는 신조어로 확장되고 있다. 외식비 부담이 커지자 소비자들이 비싼 메인 요리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애피타이저를 더 많이 주문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미국 요식업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메인 요리와 디저트 판매는 줄거나 정체된 반면 애피타이저 주문은 20%가량 늘었다. 높아진 관세와 공급망 불안을 타고 치솟은 식자재 가격에 더해 음식 값의 최대 30%에 달하는 팁 부담까지 겹치면서 미국 소비자들조차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서 ‘푸드플레이션(음식값 상승)’ ‘런치플레이션(점심 값 인플레이션)’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상승)’ 등과 같은 신조어가 일상이 됐다. 가격은 그대로 두고 양만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달 주요 외식 품목의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평균 3.4% 올랐다. 칼국수 한 그릇은 9385원에서 9864원으로, 삼계탕도 1만 7269원에서 1만 8000원으로 뛰었다. 이밖에 김밥(3500원→3646원), 김치찌개 백반(8269원→8577원), 자장면(7423원→7654원) 등 오르지 않은 음식이 없다. 재료비·인건비·임대료 등이 줄줄이 상승하면서 음식 값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불안까지 겹치며 추가로 오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송년회와 연말 모임이 몰린 12월, 서민들에게는 외식 한 번이 부담스러운 계절이 됐다. 애피타이저만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시대가 정상일 리 없다. 내년에도 또 다른 ‘○○플레이션’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제는 물가 관리의 실질적 해법을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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