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연안유람선부두에 정박한 309톤급 전기추진 안내선 ‘e-그린호’가 낮은 전기모터음을 흘리며 부두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출항하는 순간, 흔히 기다렸던 디젤엔진의 진동과 소음 대신 선박이 파도에 부딪히는 물결음만 들렸다. 부산항만공사(BPA)가 11일 첫 운항에 들어간 부산항 최초의 전기선이자 BPA 역사상 첫 전기추진 선박은, 그렇게 고요하게 바다를 갈랐다.
국회의원, 시민단체 대표, 항만물류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취항식에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냄새’였다. 기존 선박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출항 직전의 매캐한 배기 냄새가 완전히 사라졌다. 선박 내부에서는 ‘바다가 갈라지는 소리’와 ‘프로펠러가 물을 감싸며 회전하는 미세한 수중음’만 들릴 뿐이다. 디젤선 특유의 냄새와 엔진 소음, 진동이 사라지며 항만안내선 특유의 피로감도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가속 구간에서도 배는 조용했다. 안내선 데크에 서 있던 한 시민은 “배가 아니라 전기차를 타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엔진 진동이 사라지자, 선박 내외부에서의 대화도 또렷했다. 북항 재개발지 구간에 접어들자, 안내선은 더욱 고요해졌다. 외부와 선미에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항만 크레인의 움직임이나 컨테이너 장비의 소음 대비, 안내선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제로’에 가깝다. 신감만·신선대 컨테이너부두 사이를 지날 때, e-그린호의 선장인 강화웅 BPA 차장은 “부산항을 더욱 푸르고 조용하게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다는 여전히 분주하지만, 그 속을 가르는 전장 40m의 안내선은 더 이상 시끄럽지 않았다. 쌍동선(Catamaran) 구조 덕분에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도 크게 줄어 어린 승객도 안정감을 느낄 정도다.
e-그린호는 2018년 친환경 선박 도입 검토를 시작으로 설계·건조까지 7년을 들여 완성한 부산항의 첫 ‘올 배터리(All-Battery)’ 선박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378개, 전기차로 환산하면 25~30대 분량이 선체 깊숙이 탑재돼 있다. 그 배터리만으로 6~8시간 연속 운항이 가능하다. 10노트로 4시간 이상, 최대 17노트까지 속력을 내며 내항 전체를 도는 데 무리가 없다. 북항 마리나에 설치된 전용 충전시설에서 다시 충전하면, 다음 항만 투어까지 무리 없이 운항한다. 새 안내선의 등장으로 BPA는 항만투어 운영 방식도 재정비했다. 브리핑룸은 2층으로 확장됐고 1·2층 객실의 조도도 자연광에 가깝게 개선됐다. 컨테이너부두·재개발사업지·HJ중공업·한국해양대 등을 잇는 40분 코스는 기존보다 더 넓고 조용한 시야를 확보하게 됐다.
부산항 안내선은 2005년 도입된 중고선 ‘새누리호’가 20년간 맡아왔다. 정원 59명, 56t급 소형선이지만 누적 20만 명을 실으며 부산항의 ‘현장 교과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선령이 28년에 이르면서 선체 피로, 엔진 노후, 매연 문제 등이 겹치자 BPA는 2018년부터 친환경 신조선 검토에 들어갔다. 건조는 부산 향토기업 강남이 맡았고 올해 8월 BPA에 인도됐다. 김호석 BPA 부장은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글로벌 2위 환적항만이라는 부산항 위상에 걸맞은 안내선이 필요했다”며 “e-그린호는 그 기준을 친환경으로 끌어올린 상징적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BPA는 이번 전기 안내선 도입을 단순한 노후선 교체가 아닌 ‘항만 탈탄소 정책의 실증 무대’라고 강조한다. 글로벌 해운산업이 ESG·친환경 전환을 가속하는 가운데, BPA는 항만공기업 최초로 관공선 친환경선박 인증을 받은 안내선을 실투입함으로써 선제 대응에 나섰다. 부산항은 현재 친환경 항만장비 확대, 전기·수소 기반 항만 이동수단 도입 등의 전략을 추진 중이다. e-그린호는 이 전략의 첫 실험선이자 상징물인 셈이다.
e-그린호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정기 운항한다. 특히 해사대생·중고생·대학생 등 교육기관과 가족 단위의 신청 비중이 높아, 부산항 체험 프로그램의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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