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라는 제약과 한계는 없다. 오히려 무대 위에 선 배우들과 퍼펫은 소설과 영화의 상상력을 뛰어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2일부터 국내에서 초연되고 있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 공연 ‘라이프 오브 파이’에 대한 평가다. 연극도 뮤지컬도 아닌 새로운 공연 형식인 ‘라이브 온 스테이지’는 어쩌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이프 오브 파이’에 최적화된 장르다. 배가 침몰한 뒤 구명보트에 남겨진 인도 출신 소년 파이(박정민 분)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다 살아남은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구명 보트 위에 사람과 호랑이가 공존한다는 설정부터 믿기 어렵기에 살아남은 소년의 망상일 수 있고 살아남기 위해 믿은 허구일 수도 있는데 무대는 이를 표현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소년의 믿을 수 없는 태평양 바다 표류기에 관객의 상상력은 무한대가 되면서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관점에 따라서 소년의 생존기는 허구로도 진실로도 여겨질 수 있다. 소년의 말을 믿든 상식을 믿든 관객의 몫이지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상상력과 소년의 삶에 대한 의지는 판타지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파이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열연이다. 주로 영화와 드라마를 오갔던 그는 이 작품으로 8년 만에 무대에 올라 장르 불문 명연기를 펼쳐 개막 첫날부터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올라탄 배가 갑작스럽게 침몰하고 구명 보트에 홀로 남겨진 소년 파이 역을 맡은 그는 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과 열정, 불안 등 다채로운 감정에 완벽하게 몰입해 관객의 몰입도까지 끌어올린다.
고향 인도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부터 구명 보트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채식주의자인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고기를 먹기로 결심하는 장면, 부모님과 누나 등 가족의 환영을 보며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인간의 본능, 구조된 후 자신에 대한 조사를 나온 보험 회사 직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달라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막막함까지. 그간 영화와 드라마에서 봐왔던 박정민의 모든 연기가 총망라된 듯한 연기를 펼친다. 신동원 에스앤코 프로듀서는 박정민에 대해 “감정의 깊이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주요 등장 동물인 벵골 호랑이 ‘찰리 파커’와 얼룩말, 오랑우탄, 점박이 하이에나를 형상화한 퍼펫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백미다. 골격과 관절이 그대로 드러나는 디자인에 동물들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이 퍼펫티어들의 정교한 연기와 몸짓을 통해 무대 위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실제 동물도 애니메이션도 아닌 퍼펫의 움직임은 관객들이 더욱 상상력을 펼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관객들이 몰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어디까지 믿음에 의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믿음은 진정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라는 철학적 질문이다. 파이가 관객에게 마침내 던진 질문인 “어떤 이야기가 더 나은 이야기였나요”에 관객들은 저마다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은 내년 3월 2일까지 GS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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