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문성진 칼럼] 기득권에 포획된 나라의 청년들

젊은이들 일할 의욕·사업할 의지 잃어

‘한강의 기적’ 유업 현 세대서 끊길 판

거대 노조와 386세대 주도의 국회 탓

李정부 ‘특권 내려놓기’ 솔선수범해야





중소 제조 업체를 경영하는 60대 중반의 K 사장은 얼마 전 자신이 청년 시절 창업해 수 십년간 일궈온 기업을 매물로 내놓았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아들이 있지만 아버지가 키운 기업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아서다. 수익성 높은 알짜 기업이 사모펀드 등에 팔리고 되팔리는 과정에서 핵심 기술과 노하우가 모두 사라질 게 걱정은 됐지만 매각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창업주 고령화에 후계자 부재가 맞물리면서 매물화하는 중소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삼일PwC에 따르면 2022~2024년 3년간 주인이 바뀐 국내 중소기업이 1065개사에 달했다. 아직 후계자를 찾지 못한 중소기업도 21만 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는 중소기업의 27.5%가 자녀 승계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이유로는 ‘자녀에게 무거운 책무를 주고 싶지 않아서(42.8%)’와 ‘자녀가 원하지 않아서(24.7%)’가 꼽혔다. 자칫 우리 경제의 뿌리이자 근간인 중소 제조업의 대가 끊길 판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취업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들의 취업 기피는 더 심각하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구직활동도 일도 하지 않는 30대 ‘쉬었음’ 인구가 해당 월 역대 최대치인 31만 4000명에 달했다. 청년층(15~29세)에서 취업자는 17만 7000명 감소했고 고용률은 지난해보다 1.2%포인트 낮은 44.3%로 19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청년 취업난은 경기 둔화로 인한 고용 위축의 영향도 있지만 양극화된 노동 구조의 경직성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다. 청년층 ‘쉬었음’ 급증은 고용보험 제도가 ‘실업자 생계 유지 장치’로 전락한 탓이 크다. 최저임금의 80%에 연동된 실업급여 하한액이 계속 오르면서 비과세소득으로 분류되다 보니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 기준 월급과 별반 차이가 없어졌다. 그냥 쉬어도 일하는 것 못지않게 소득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근로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하다. 청년의 가업 승계 기피는 기업들에 가해지는 세제·법제 부담이 가장 큰 장애 요소다.

청년들이 일할 의욕도 기업할 의지도 없다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한강의 기적’ 세대의 유업을 계승한 현 세대의 경제 성과가 후대로 이어지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우리나라를 기업할 맛나는 나라, 일할 의욕이 넘치는 나라로 탈바꿈시키는 혁신 없이는 위기 탈출이 어렵다. 혁신을 위해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가로막는 기득권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무엇보다 거대 노조의 기득권을 해소하는 일이 시급하다. 고용 시스템을 성과 중심 체계로 유연화해야 청년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가 돌아간다. 노동 경직성을 더 악화시켜 청년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주4.5일 근무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65세로의 정년 연장도 퇴직 후 재고용 원칙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뒤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은 첨단 업종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 완화 등 노동 유연화에 더 힘써야 할 때다.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무제한 토론하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징벌적’ 상속세율도 낮춰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너무 잔인하다”고 지적했을 정도로 현행 상속 세제는 문제가 많다. 30억 원만 자녀에게 상속해도 50%의 무거운 상속세율을 적용받는다. 심지어 최대주주에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인 60%의 세율이 부과된다. 중대재해처벌법·노란봉투법 등 노동 관련 규제에 대한 보완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기업 승계 기피 현상이 완화될 수 있다. 기업을 물려주는 게 ‘부의 이전’이 아닌 ‘고통의 승계’라는 한탄이 더는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 우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통찰을 곱씹어 봐야 한다. 스티글리츠는 정당과 관료의 자체 속성만으로도 자원 분배의 왜곡이 발생하며,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가 이를 더 심화시킨다고 봤다. 정부가 이익집단에 포획당한다는 이른바 ‘포획설’ 이론이다. 거대 노조에 포획된 현 정부의 모습이 이에 겹쳐진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득권 구조를 해체해야 청년들에게 밝은 미래를 남겨줄 수 있다. 그 시작은 운동권 출신 386세대가 지배하는 국회의 특권 박탈이어야 할 것이다. 자원 분배의 왜곡을 초래하는 불량 입법이나 양산하는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이고 보수도 일반 공무원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집권 6개월 차를 막 지난 이재명 정부가 새해에는 ‘특권 내려놓기’ 실천을 솔선수범하기를 권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기획재정부·국가데이터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