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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한쪽 눈으로 버텨도…죽을 때까지 쓰고 싶다"

■ 황석영 5년만에 신작 '할매' 출간

600살 고목 소재 생명의 순환 그려

사회·문명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여든 넘어 체력 한계 절감하지만

다음 작품도 쓰고 싶어 움찔움찔"

황석영 작가가 9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신간 '할매' 출간 간담회에서 "오른쪽 눈이 시력을 잃어서 한쪽 눈으로 버티는데 그래도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 곳에서 꿋꿋이 버틴 600년 된 팽나무의 이야기가 삶과 죽음, 사회와 문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 문학의 거목 황석영이 고목을 주인공으로 한 신간을 들고 돌아왔다. 황 작가는 9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신작 ‘할매(창비)’의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집필 의도와 향후 구상을 밝혔다. ‘할매’는 ‘철도원 삼대’ 이후 5년만의 신작이다. ‘철도원 삼대’는 지난해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불발됐다.

황 작가는 이번엔 장구한 역사와 인간 너머의 생명으로 이야기를 확장했다. 이번 책의 주인공은 개똥지바귀의 육신에서 싹튼, 600년의 세월을 겪어온 팽나무 ‘할매’다. 소설은 팽나무가 목격한 지난 600년 간의 격동의 역사와 민초의 장대한 삶을 파노라마처럼 다룬다. 조선 건국 초기 환속해 갯벌을 가꾸던 승려나 우금치 전투에서 산화한 동학농민군의 삶을 생생한 입담으로 펼쳐 낸다. 근현대로 넘어와서는 ‘할매’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민주화운동, 새만금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까지 각종 수난과 역경을 관통하는 인물들의 삶을 그렸다.

황 작가는 “문정현 목사와 시민단체가 미군 기지 건설에 맞서 지켜온 실제 군산의 팽나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팽나무를 중심으로 사람과 자연이 겪는 각종 카르마(업보)와 환란, 거대한 순환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연의 서사를 시도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팽나무 씨를 먹은 개똥지바귀로부터 시작해 팽나무가 싹이 트고 자라면서 인연이 시작됩니다. 작품의 중반까지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빠진 서사를 쓰는 것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자연과 교감하는 산문을 쓰면서 기쁨과 놀라움을 경험했습니다."



노벨 문학상의 단골 후보로 거론됐던 그는 한강 작가의 작품성은 인정하면서도 서구 중심적인 노벨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황 작가는 “해외에서 누가 물어보면 ‘이쁜 한강’ 작가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라면서 “한국의 ‘안티고네’에 비유할만하다”고 말했다.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은 오빠들의 시신을 수습한다. 황 작가는 “양심과 인간성의 이름으로 기존의 질서에 반기를 들며 비극을 치유한 것이 안티고네”라며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광주민주화혁명과 제주4·3혁명이라는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트라우마를 여린 손으로 달래는 아름다운 글”이라고 상찬했다.

그러면서도 황 작가는 서구·유럽 중심적인 노벨상에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이에 대응하는 상을 제정하는 데 동참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강대국의 패권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인 문화 예술을 일으켜 세워보려는 작가들과 연대하면서 새 흐름을 만들어보려 한다”며 1980년대 명맥이 끊긴 ‘로터스(Lotus)상’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내년 11월 시상식을 재개하고 향후 2년에 한번씩 행사를 치를 계획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1943년생으로 올해 팔순을 넘긴 그에게 작품 활동의 어려움을 묻자 체력적인 한계를 토로하면서도 창작열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70대까지만 해도 조깅도 하고 말짱했는데 여든을 넘기면서 기운이 확 떨어졌다”며 “특히 오른쪽 눈은 시력을 잃어서 한쪽 눈을 감으면서 집필하고 있지만 아직은 버틸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작품도 쓰고 싶어서 움찔움찔하고 있다”며 “죽기 전에 두세 편쯤은 더 쓸 수 있겠다 싶다. 미수까지 쓰려고 한다. 비록 소설을 못쓰게 되면 일기 형식으로라도 죽을 때까지 현역 노작가의 노릇을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황석영은 1962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입석부근’이 입선되며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탑’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객지’ ‘삼포 가는 길’ 같은 초기 단편부터 현대사의 격랑을 정면으로 담아낸 장편 ‘장길산’, 분단의 비극을 파고든 ‘무기의 그늘’ 등 굵직한 작품들을 남기며 독보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자퇴와 가출, 떠돌이 생활, 베트남전 참전, 방북과 수감까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 자체가 곧 한국 현대사의 거울이기도 했다. 창비 출판사는“‘할매’는 한국적인 정서 안에 인류 보편의 생명 사상을 남아냈다”며 “작품을 통해 거장 황석영이 도달한 웅숭깊은 사유의 숲을 거닐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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