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출 규제로 첨단 공정에서 소외된 중국이 구형 반도체를 활용한 새로운 기술로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칩에 필적하는 성능을 구현했다고 주장했다. 다수 칩을 연결하는 ‘물량 공세’로 개별 칩의 성능 열세를 상쇄하려는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로 꼽히는 웨이샤오쥔 중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칭화대 교수)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ICC 글로벌 CEO 서밋’에서 구형 반도체를 활용해 설계한 AI 칩을 공개하며 “엔비디아의 최신 4㎚(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칩에 맞먹는 성능을 낸다”고 말했다.
14나노급 로직 칩(시스템반도체)과 18나노급 D램을 위로 겹겹이 쌓는 최신 패키징 기술을 적용해 칩을 평면에 넓게 배치하는 기존 방식 대비 칩 간 거리를 대폭 줄여 처리 속도와 전력효율을 대폭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웨이 부회장은 “세부 정보는 연말에 공개할 계획”이라며 “엔비디아 칩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서방의 공급망 통제를 돌파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덧붙였다.
기술적 한계를 칩 개수로 보완하는 전략은 이미 중국 주요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화웨이가 7월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발표한 AI 서버 시스템 ‘클라우드매트릭스 384’가 대표적인 사례다. 자체 AI 칩 ‘어센드 910C’ 384개를 탑재해 블랙웰 칩 72개를 장착한 엔비디아의 대표 AI 서버인 ‘GB200 NBVL72’보다 1.7배 높은 서버 성능을 구현해냈다. 9월에는 1만 5488개의 어센드 칩을 연결할 수 있는 ‘슈퍼팟’ 솔루션을 엔비디아의 ‘엔비링크’ 대항마로 내놓기도 했다. 바이두와 알리바바 역시 자체 개발 칩 다량을 하나로 묶는 대규모 컴퓨팅 클러스터를 구축 중이다. 자체 AI 칩을 보유하지 않은 텐센트 또한 여러 종류의 자국산 AI 칩을 통합해 활용하는 플랫폼을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이 패키징 혁신에 집중하는 것은 ‘이 대신 잇몸’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칩 생산능력은 미국의 수출통제로 현재 14나노급 반도체 칩과 18나노급 메모리 수준에 묶여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개별 AI 칩 열세를 대규모 클러스터로 보완하는 것만이 중국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우회로라는 평가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역시 “거대 연산 기술로 단일 칩의 기술을 극복해 실질적 결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 역시 자국산 반도체 사용을 적극 장려하며 칩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엔비디아 칩 사용 자제령을 내리는 한편 자국산 칩을 활용하는 데이터센터에는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중국 기술기업들은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전히 엔비디아 칩에 대한 우회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바이트댄스 등 주요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를 피해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데이터센터에서 최신 AI 모델을 훈련하고 있다. FT는 “대부분의 중국 기업은 여전히 엔비디아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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