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두두."
그날 밤 여의도 상공을 찢던 굉음은 여전히 귓가에 선명하다.
2025년 12월 3일, 오늘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12·3 비상계엄' 사태 1주년이다. 평온하던 1년 전 화요일 밤 10시 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던진 "비상계엄 선포"라는 6글자는 46년 전 묻어둔 군화발의 기억을 21세기 한복판으로 강제 소환했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선포 이유를 밝혔다.
△계엄은 이렇게 시작됐다…155분의 충격=계엄 선포 직후인 오후 10시 53분, 윤 전 대통령의 지시는 거침없었다. 그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 비상계엄 발표하는 거.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지시했다.
오후 11시 23분, 박안수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명의의 포고령 제1호가 발령돼 정치활동 금지, 언론 통제 등 민주주의의 숨통을 죄는 조치가 즉각 시행됐다.
경찰에 대한 지시도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여섯 차례 전화를 걸어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잡아들여. 불법이야. 국회의원들 다 포고령 위반이야. 체포해"라며 입법부 무력화를 시도했다.
날짜가 넘어간 12월 4일 0시 20분경에는 더 노골적으로 지시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에게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 다 끄집어내라", "아직 국회 내에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라"고 압박했다.
그 시각 국회는 전장이었다. 헬기가 국회 운동장에 병력을 쏟아냈고 무장 계엄군은 유리창을 깨고 본청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섰고 의원들은 담장을 넘었다.
결국 새벽 1시 1분, 국회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안이 가결됐다. 계엄 선포 155분 만이었다.
△"엄청난 공포, 잠시 후회도 들었다"…한 비서관의 증언=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소속 김양진 비서관은 “비현실적 공포”로 기억한그날을 서울경제에 생생히 전했다.
그는 당시 야근을 마치고 집에서 쉬던 중 어머니에게서 "비상 계엄이 선포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처음엔 가짜뉴스인가 싶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다”며 겉옷을 들고 곧장 국회로 달려갔다고 설명했다.
김 비서관이 국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1시경. 그는 국회 1문 옆 도서관 출입구로 먼저 진입을 시도했다. 출입증을 보여줬음에도 경찰은 무전기만 든 채 묵묵부답이었다. 김 비서관은 “그때 처음으로 ‘정말 큰일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1문이 완전히 봉쇄되기 전이라 본청 진입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병력이 도착하지 않은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폭풍전야’였다.
김 비서관이 꼽은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건물이 울릴 정도로 ‘두두두두’ 하는 헬리곱터 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김 비서관은 “처음엔 기관총 사격음으로 오해했고 솔직히 잠시 후회도 들었다”며 “소리가 헬기라는 걸 알고도 잠시 몸이 굳을 만큼 두려웠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나 공포보다 강한 것은 연대였다. 그는 "본청 앞 시민들은 계엄군을 막으면서도 절대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며 "작은 충돌이 큰 비극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1년이 지난 소회에 대해 그는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모두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결의, 몸이 부서져도 본청을 사수하겠다는 단호함이 모두의 눈에 있었다”며 “옳은 선택이었고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었다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계엄 해제 이후…탄핵과 끝없는 수사=2024년 12월 4일 새벽 4시 27분. 윤 전 대통령은 국회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형식으로 2차 담화를 발표하며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계엄 해제 직후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3개 수사기관이 동시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수사에 착수했다. 현직 대통령 수사는 헌정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같은 날 오후 2시 43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6당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 소추안에는 비상계엄 자체가 위헌·무효이고, 군을 불법 동원한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달 7일 오전 10시, 윤 전 대통령은 1분 50초 분량의 짧은 담화를 통해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을 모두 당에 일임하겠다며 "제2의 계엄은 결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날 진행된 1차 탄핵 표결은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05인이 불참해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을 위해서는 재적의원 3 분의 2인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일 뒤 진행된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찬성 204표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윤 전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됐다. 국민의힘에서 최소 12명의 이탈표가 나온 결과였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헌재의 탄핵심판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마침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비상 계엄 선포로부터 약 4개월이 흐른 2025년 4월 4일. 광화문 광장은 탄핵 선고를 지켜보려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문형배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민국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판시하며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주문을 낭독했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탄핵소추된 역대 세 번째 대통령이자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받은 두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파면 이후 수사에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이어 김 여사까지 법정 구속되며 헌정사 77년 만에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 수감됐다.
계엄 선포 1주년을 맞은 지금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다수의 재판은 진행 중이며 첫 선고는 내년 초 이뤄질 전망이다. 우리는 여전히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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