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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과 멕시코, 두 발효문화의 만남

■허태환 주멕시코 대사

김장 시연·사물놀이 즐긴 멕시코인들

인내·기다림의 미학 발효문화 공유

이민 120주년, 융합의 새 장 열 때

허태환 주멕시코 대사. 사진 제공=외교부




우기가 끝난 11월의 멕시코시티는 건조하고 청량한 가을 날씨다. 애니메이션 ‘코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죽은 자의 날’을 비롯해 거리마다 축제를 즐기며 서로의 문화를 나눈다. 이곳에서 19일 주멕시코한국대사관은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다. 주멕시코한국문화원, 한국관광공사 지사, KOTRA 중남미지역본부, 한인회 등과 미겔 이달고 구청에서 한국 종합 홍보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이날 한국문화원은 ‘한국의 맛과 흥’을 주제로 ‘김치의 날’ 행사를 치렀다. 주민들은 김장 담그기 시연 후 수육과 함께 갓 담근 김치를 맛보며 한국의 나눔과 공동체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여기에 사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이 더해져 멕시코시티 한복판에 한국의 향취가 살아 숨 쉬었다.

매년 11월 22일은 한국 김장 문화의 전통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김치의 날이다. 김치는 배추와 고추·젓갈이 만나 유산균 발효를 거치며 깊은 맛을 완성한다.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숙성되는 과정은 인내와 기다림의 미학을 담아내며 시간 속에서 풍미가 살아난다. 함께 모여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우리 공동체 문화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흥미롭게도 멕시코 역시 발효 문화를 지닌 나라다. 용설란 수액을 발효한 ‘풀케’, 파인애플 껍질을 발효한 ‘테파체’, 옥수수 반죽을 숙성해 만든 ‘포솔’은 오랜 세월 멕시코 공동체가 이어온 전통 발효 음료다. 멕시코의 전통 요리가 옥수수·고추 등 토착 재료의 사용과 제조 기술, 관습, 의식 등 소비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은 두 나라의 공동체 문화가 생각보다 훨씬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멕시코인들은 매운맛과 발효의 깊은 풍미를 가진 한국의 김치를 참 잘 받아들인다.

김치의 날 행사에서도 양국의 문화적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치의 아삭한 식감에 감탄하고 사물놀이 장단에 몸을 맡기던 현지인들의 모습은 국경을 뛰어넘는 공감의 힘을 보여줬다. 문화 외교의 성과는 화려한 말보다도 이렇게 서로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웃고 나누는 순간들 속에서 드러난다. 문화는 설명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스며들고, 그 체험은 다시 기억이 돼 관계를 이어준다.

올해는 한국의 멕시코 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다. 1905년 유카탄으로 이주한 우리 국민들은 낯선 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공동체를 꾸리고 이웃과 함께 멕시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일궈냈다. 이러한 공동체적 가치와 가족 중심 문화는 멕시코의 정서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이제 이 땅에서 서로 돕고 역사를 쌓아온 우리 국민들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멕시코 사회와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할 때다.

발효가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깊어지듯 이 땅에서 한국과 멕시코의 인연도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나눌 때 더욱 향기롭게 익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김치 한 조각, 사물놀이의 울림, 그리고 함께 웃는 순간들이 쌓여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따뜻해질 것이다. 올해가 한국과 멕시코 양국 관계의 발효 시간을 한층 진하게 만든 계기가 됐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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