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이달 12일 오후 4시, 대구 서문시장에 또다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4지구 동편 상가에서 시작된 불이었다. 다행히 상인들이 소화기를 들고 뛰어들어 큰불은 막았지만 시장 전체는 다시 한번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에게 '연기'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던 9년 전 그날의 '악몽'을 소환하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9년 전인 2016년 11월 30일 새벽 2시. 대구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은 거대한 불쏘시개가 됐다. 1지구와 4지구 사이에서 솟구친 불길은 의류와 침구류 등 가연성 물질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다.
당시 소방차 100대와 소방관 400명이 투입됐지만 역부족이었다. 축구장 13개 면적(9만 3000㎡)에 달하는 거대 시장은 붉은 화염에 갇혔다. 화마(火魔)는 점포 679곳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고 재산 피해만 1000억 원이 넘었다. 당시 상인 황모(54) 씨는 "어제 6000만 원어치 물건을 새로 떼왔는데 보험도 없이 다 탔다"며 잿더미 앞에서 오열했다.
△끊이지 않는 '화마의 저주'... 10년 주기설?=서문시장 상인들에게 화재는 지독한 굴레다. 1922년 개장 이후 크고 작은 불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5년 대형 화재로 4지구가 붕괴된 바 있고 2005년 12월에는 2지구 전체가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2지구 화재는 사흘간 이어지며 1190개 점포를 태우고 689억 원의 피해를 냈다. 원인은 '누전'이었다.
2005년 화재 당시 한 상인은 2지구에서 장사를 하다 피해를 보고 4지구로 옮겨왔지만 2016년에 또다시 화재를 당했다. 그는 "불을 피해 도망쳐온 곳에서 또 불을 만났다"며 망연자실했다. 서문시장 화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취약점이 낳은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9년 지났지만…상인들은 여전히 '떠돌이 신세'=더 큰 문제는 '사후 대책'이다. 2016년 화재 직후 대구시는 안전진단 E등급(사용 불가)을 받은 4지구 건물을 철거했다. 2017년 8월, 상인들은 인근 쇼핑몰인 '베네시움'으로 거처를 옮겨 임시 영업을 시작했다. 대구시가 56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하고 임대료를 면제해줬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였다.
화재 발생 9년이 지난 2025년 11월 현재. 상인들은 여전히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재건축을 위한 시공사 선정에 나섰지만 공사비 문제와 상인 조합 간의 갈등으로 수차례 유찰과 취소를 반복했다. 화려했던 4지구는 텅 빈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과거 2005년 2지구 화재 당시 상인들이 새 건물을 짓고 입주하기까지 기다린 시간은 6년 9개월이었다. 하지만 이번 4지구 사태는 그보다 더 길어지고 있다.
이달 12일 발생한 화재 소동은 상인들에게 뼈아픈 현실을 다시금 일깨웠다. 불은 꺼졌지만 안전에 대한 공포와 기약 없는 재건축 대기라는 '이중고'는 현재진행형이다. 대구의 자부심이라 불리는 서문시장이 '화약고'라는 오명을 벗고 상인들이 안전하게 활동을 할 수 있는 보금자리로 다시 태어나기까진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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