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중국의 우한처럼 도시 단위의 자율주행 실증에 나서는 것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자율주행 실증 실적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미국 구글사의 웨이모의 경우 실증에 돌입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누적 주행거리는 1억 6000만 ㎞, 투입된 자율주행 자동차 운행 대수는 2500대에 달한다. 중국의 바이두도 누적 주행거리 1억 ㎞, 운행 대수는 1000대다. 중국의 자율주행 테스트베드인 우한시의 자율주행 면적은 서울의 5배에 달하는 3000㎢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율주행 산업에 뛰어든 전체 기업을 모두 합해야 누적 주행거리 1306만 ㎞, 운행 대수는 132대에 불과하다. 자율주행 상위 20대 기업에 미국과 중국 기업이 각각 14개와 4개씩 이름을 올리는 사이, 한국은 1개에 그쳤다. 정부는 26일 “미국·중국은 대규모 자본과 수많은 실증을 바탕으로 성장 중이나 우리나라는 스타트업 중심의 제한적 실증에 그치고 있다”며 “도시 전체가 실증 구역인 ‘자율주행 실증도시’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자율주행 실증도시는 현재 운행 중인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를 확대 개편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 47곳에서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를 운행 중인 가운데 지자체 내 일부 구간으로 실증 구간이 제한되다 보니 자율주행 기술의 원천인 데이터 축적에 제한이 많았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실증도시를 통해 제한적 노선·구간 중심으로 실증 범위가 협소했던 시범운행지구의 한계를 벗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율주행 실증도시는 지방의 소도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9월 열린 핵심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서울이나 수도권 등 복잡한 곳보다는 국토균형발전을 고려해 지방 도시가 경제적 기회를 찾는 게 중요하다”며 “지방 중간 규모 도시 하나를 통째로 자율주행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자율주행 실증도시에서는 스타트업 위주로 진행되던 실증 사업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 모델로 재편되고 100대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투입된다. 임월시 국토부 자율주행정책 과장은 “해당 도시는 100대 이상의 자율주행 차량이 투입되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함께 참여하는 ‘K자율주행’ 협력 모델을 기반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 개발의 핵심인 주행 데이터 축적을 뒷받침하고 국민이 일상 속 자율주행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가로막고 있던 규제도 완화된다. 우선 자율주행 데이터 확보를 위해 사용되는 영상 데이터를 편집 없이 원본 영상으로 활용하도록 법을 개정한다. 현재는 촬영 사실을 표시한 차량을 이용해 영상 데이터를 수집한 뒤 영상 속 사람이나 사물 등에 대해 가명 처리를 해야 한다. 원본 영상 활용 시 자율주행 인식 정확도는 익명 처리 영상을 활용할 때보다 최대 25%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율주행차의 도로 시험 운행을 허용하는 ‘임시운행허가’ 제도도 개선된다. 현재는 자율주행 버스나 자율주행 택시를 실증하기 위해 운전자 외에 개발사 관계자가 동석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있었지만 개발사뿐 아니라 운수사업자도 임시운행허가를 취득할 수 있도록 자율주행 운행 허가의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이 외에도 △교통약자보호구역 내 자율주행 허용 △안전기준 특례 지역 확대 △시범운행지구 지정 권한 지자체로 확대 △자율주행차 원격주행 허용 등이 추진된다.
자율주행 연구개발(R&D) 지원도 강화된다. 범부처 차원에서 자율주행차 전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고 인공지능(AI) 학습센터를 조성해 기업의 R&D를 지원한다. 해외 기관과의 R&D 협력도 원활히 이뤄지도록 국내 기업에 권리가 귀속되는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국가핵심기술 수출 심사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자율주행 관련 법령도 정비된다. 기존의 운전자를 대체하는 법적 책임 주체를 도입하는 등 형법과 행정제재 대상을 정립하고 차량 사고 시 민사상 책임 소재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사고책임 태스크포스(TF)’를 관계기관 합동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2027년 레벨4 자율주행 자동차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레벨4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완전자율주행(레벨5)의 전 단계다. 국토부 관계자는 “2027년 완전자율주행차 상용화 목표 달성을 위해 자율주행 교통·운송 서비스의 제도화를 위한 자율주행 산업 관리 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는 등 향후 자율주행차 산업 발전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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