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중문화 시상식 중 토니상은 우리와 가장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올해 토니상 시상식의 주인공은 K뮤지컬이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작품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6개 부문을 석권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반딧불이들(fireflies)’이라 지칭하는 팬덤을 형성하고 토니상 석권으로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어쩌면 해피엔딩’이 금의환향해 지난달 말부터 한국 관객과 만나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머지않은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찾아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난 주인 제임스의 말을 믿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올리버와 자신을 충전할 충전기를 빌려 달라고 나타난 이웃집의 ‘헬퍼봇’ 클레어가 티격태격하다가 여느 인간들처럼 서로에게 스며들며 사랑에 빠진다. 클레어는 주인을 그리워하는 올리버에게 제임스가 이사 간 제주도로 갈 것을 제안하고 이들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제주도로 향한다. 하지만 올리버가 마주한 것은 이미 죽은 제임스가 남긴 편지다. 올리버와 제임스의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 인간을 믿지 않았던 클레어가 진심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객석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온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들의 순수한 사랑과 믿음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을 돌아보게 되는 모든 순간이 클라이맥스다.
극의 초반 올리버가 제임스를 그리워하는 가운데 흐르는 넘버 ‘우린 왜 사랑했을까’부터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올리버의 끝없는 사랑과 믿음이 반복되는 대사들은 나를 아끼는 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남성 관객들도 공연장을 나서면서 “왜 이렇게 슬프냐”며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관객은 “부모님하고 봐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따뜻한 감정을 배가하는 LP 플레이어, 빌 에반스, 존 콜트레인, 듀크 엘링턴 등 감미로운 선율의 재즈 피아노 연주, 종이컵, 반딧불이 등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장치들은 이러한 정서를 더욱 고조시킨다. 그래서 가까운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헬퍼봇들의 이야기가 공상과학(SF)이 아닌 휴먼 드라마이자 감성 멜로 장르로 확장된다. 또 화려한 볼거리가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하는 뮤지컬적 요소를 절제하고 연극적 요소를 강조해 관객들로부터 밀도 높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의 공연은 어떻게 다를까. 미국 공연은 1000석 규모로 가장 비싼 가격이 500달러(약 73만 원)에 달하고 평균 가격도 200달러다. 제임스의 서사가 확대됐고 한국 공연에 없던 넘버가 추가됐다. 10주년 한국 공연은 이전 시즌보다 무대가 넓어졌고 객석도 300석에서 500석으로 늘어났다. 다만 두 공연의 공통점은 조건 없는 사랑이 선사하는 감동의 언어와 진심 어린 눈물의 의미다.
해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은 대개 대중성보다 작품성이 수상의 주요한 이유가 된다. 이 때문에 대중적 감수성은 수상의 이유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의 권위와 위엄을 일깨우는 작품이기에 충분했다.
이번 10주년 공연에는 지난 시즌들을 통해 실력을 입증한 캐스트와 새로운 매력을 더할 뉴 캐스트가 다시 한번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2016년 초연에 출연한 올리버 역 김재범, 클레어 역 전미도와 최수진, 제임스 역 고훈정이 특별 출연하며 2018년 재연에 출연한 올리버 역 전성우와 클레어 역 박지연, 2021년 사연에 출연한 올리버 역 신성민, 2024년 오연에 출연한 클레어 역 박진주와 제임스 역 이시안이 캐스팅됐다. 또 올리버 역 정휘, 클레어 역 방민아, 제임스 역 박세훈이 새로운 캐스트로 합류했다. 공연은 내년 1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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