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지지층 확장 대신 강성 지지층에만 매달리고 있다. 정부와 함께 국민 통합을 이끌어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추기보다 강성 당원의 입맛에 맞춘 개별 의원의 각개약진식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다. 국민의힘도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 속에서도 외연 확장 전략 대신 당장 집토끼 품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 선출에 ‘당원 1인 1표제’를 적용하는 안에 대한 당원 의견 수렴 투표 결과를 언급하면서 “당내 민주주의가 당원 손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19~20일 이틀간 진행된 1인 1표제 투표에서 참여자 27만 6589명 중 24만 116명(86.81%)이 찬성했다. 이 안건은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대폭 높이는 게 핵심이다. 이른바 ‘정청래 룰’로 통한다.
당원 주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당내에서는 정 대표가 내년 8월 당 대표 연임을 대비해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짜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정 대표가 앞세우고 있는 ‘3대 개혁(검찰·사법·언론)’ 등 강경책을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의 발언권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번 투표에서 참여율이 16.81%에 그친 걸 두고 “당심이 아닌 정 대표의 지지층을 확인한 결과일 뿐”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강성 지지층 공략에 혈안이 된 것은 당 지도부뿐만이 아니다. 소위 개혁 법안을 이끄는 민주당 의원들은 연일 초강경 발언과 구상을 쏟아내면서 당을 더 왼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검찰·사법개혁을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언론 관련 이슈를 이끌고 있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법사위 간사인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원내지도부와 엇박자를 낸 ‘검사장 18명 고발’ 건과 관련해 “충분한 상의를 했다. 원내(지도부)가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김병기 원내대표가 예민한 사안을 숙의 없이 상임위 차원에서 추진한 데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자 응수한 셈이다. 김 원내대표가 “뒷감당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뒷감당 잘할 수 있다”며 맞받았다. 민주당 지지층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통쾌하다”며 김 의원을 지지하는 게시글과 댓글이 이어졌다.
당 안팎에서는 국민 전체를 통합해 이끌어야 할 여당이 강성 지지층에 보내는 메시지 관리에 지나치게 치중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야당과의 충돌이 빈번해지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집중하는 외교·민생 성과가 가려지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현희·김병주 최고위원이 강성 지지층 요구가 높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다시 꺼내들자 정 대표는 이날 “대통령의 순방 외교가 빛이 바래지지 않도록 당정대가 긴밀히 조율하는 게 필요하다”고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사정도 심각하다. 국민의힘은 8월 장동혁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외연 확장에 실패하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20% 초중반 박스권 지지율에 갇힌 상태다. 장 대표는 최근 선수별 의원 만남을 이어가며 지지율 반등을 위한 당내 의견 수렴에 착수했다. 이 가운데 일부 재선 의원들은 장 대표를 면담하고 외연 확장을 위해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사과를 비롯해 당명 변경까지 건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서는 내년 6·3 지방선거에 앞서 당을 재건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중도층 공략을 제시하고 있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당이 강성 목소리에 끌려 다니는 모습보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새롭게 힘을 실어줄 분들을 적극적으로 확장해서 끌어안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외연 확장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지난해 계엄 이후 당 지지층이 크게 와해된 상태에서 그나마 구심점을 갖추고 있는 강성 지지층 세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중도층을 겨냥한 행보로 얻을 수 있는 확장성이 극렬 지지층 이탈에 따른 피해를 상쇄할 정도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정치권에서는 비상계엄 1년과 장 대표의 취임 100일이 맞물리는 다음 달 초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은 사견을 전제로 “12월 3일에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계엄에 대한 입장 등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계엄 사과 및 윤석열 전 대통령 절연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런 취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답했다. 국민의힘은 22일 부산·울산·창원을 시작으로 다음 달 2일까지 전국을 순회하는 ‘민생회복 법치수호 국민대회’를 통해 민심을 수렴하고 향후 정국 운영 전략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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