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미제로 남았던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경찰의 집요한 추적으로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1일 “2005년 양천구 신정동에서 발생한 두 건의 여성 대상 강도·성폭력·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최종 특정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두 사건은 2005년 6월과 11월 서울 신정동의 한 빌딩 주변에서 발생했다. 병원을 찾았다 귀가하던 피해자들은 빌딩 관리인 장 모 씨에 의해 지하 창고로 끌려가 금품을 빼앗기고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시신은 쌀 포대 등으로 감싸진 뒤 차량에 실려 인근 주차장에 유기됐다. 이들은 모두 목이 졸려 숨졌고 머리에는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다. 두 차례 범행의 장소와 수법은 거의 같았지만 사건 직후부터 8년간 벌인 수사로는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건은 2013년부터 미제로 전환됐다.
일명 ‘엽기토끼 사건’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2015년 한 방송 프로그램을 계기로 당시 발생한 반지하 주택 납치 미수 사건과 동일범에 의한 소행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납치 미수 사건의 피해자가 탈출 전 몸을 숨겼던 곳에서 엽기토끼 스티커를 봤다는 일화가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이후 표류하던 사건의 전모는 과학수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드러나게 됐다. 2016년 재조사에 들어간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피해자들의 시신에서 모래가 발견된 점에 착안해 서남권 공사 현장 관계자, 신정동 전·출입자 등 23만여 명을 수사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1514명의 유전자를 채취·대조하는 작업을 벌였다. 단서가 없자 범위를 사망자로 넓혀 56명의 유류물을 추가 분석했고 이 과정에서 이미 사망한 뒤 병원에 보관돼 있던 장 씨의 검체가 경찰에 확인됐다. DNA는 두 차례 사건에서 나온 증거와 일치했다. 그간 알려졌던 바와 달리 재수사 결과는 ‘엽기토끼’ 납치 미수 사건과 무관했다. 20년 미제 사건의 범인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장기 미제 사건을 끝까지 규명하겠다”며 “오랜 시간 기다려 준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이 사건은 피의자 장 씨가 2015년 사망해 불송치로 종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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