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지만 김세영의 연습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 김세영은 경기 막판 연거푸 아이언 샷 실수를 했다. 선두를 내준 그의 얼굴엔 분이 가득했다. 어둑해진 후에야 숙소로 돌아간 김세영은 밤새 씩씩 거리느라 잠을 설쳤다.
아침 6시. 김세영은 다시 드라이빙 레인지를 찾았다. 그런 후 최종일 경기에서 이글 1개, 버디 8개로 10언더파를 몰아친 끝에 5타 차 우승을 거뒀다. 2016년 3월 김세영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할 당시 옆에서 지켜본 모습이다.
김세영이 돌아왔다. 10월 땅끝 해남의 파인비치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2020년 펠리컨 챔피언십 제패 후 5년 동안 이어지던 ‘우승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했다.
이번 인터뷰는 김세영의 우승 전에 이미 약속된 것이었다. 대회 3주 전 일정을 잡았다. 하반기에 점차 살아나는 그의 모습에서 9년 전 김세영의 승부에 불타는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세영 특유의 마법 같은 승부가 언제 재개될지 묻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사 모자도 준비해 놨다. 그런데 김세영은 묻기도 전에 우승으로 답했다.
우승 다음날 김세영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필드가 아닌 도심의 광장을 거닐었다. 5년 만에 커다란 파도를 넘은 김세영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오랜 만의 우승이다. 다시 한 번 축하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정말 많은 축하 문자를 받았다. 일일이 답장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 주신 덕분이다.”
이번 우승으로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해줘야겠다.
“오히려 내가 너무 많은 걸 받았다. 너무 감사하다.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내가 선물을 드리고 싶다. 내가 그동안 미처 못 느꼈던 걸 이번에 깨달아서 감사하다.”
어떤 걸 깨달았다는 건가.
“고향에서 시합을 하니까 프로암처럼 소통하면서 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랬더니 모든 게 잘 풀렸다.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가둔 듯했다. 그게 마이너스였다.”
최종일 첫 홀에서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했다. 12승을 했던 선수도 그런가.
“오랜 만의 우승 경쟁이었으니까. 예전에 언니들과 경쟁할 때는 마음이 편했다. 근데 동생들과 경쟁을 하다 보니 동기부여가 잘 안 됐다. 잘못하면 심리적으로 말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을 넘어서는 건 마음의 부담이 적었지만, 나를 넘어서려는 후배들을 넘어서는 건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내가 앞으로 한 번 더 도약하는 선수가 되려면 이런 분위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관문, 그래서 더 떨렸다. 초반에 거의 다 따라잡혔을 때 ‘이번에 또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타가 장기였는데, 이번에 보니 아이언과 퍼팅이 훨씬 노련해졌더라.
“지금은 후배들과 치면 내가 특별히 멀리 친다는 느낌이 안 든다. 대신 지금은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이더라.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좋아지는 부분과 약해지는 부분이 있다. 약해지는 포인트를 느끼고 조금씩 조절해야 한다.”
코스 공략도 영리하게 하던데.
“아무래도 내가 코스를 파악하고 캐디랑 호흡을 맞춰야 소통이 잘 된다. 서로의 의견에 대한 믿음과 조율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런 이유에서 나도 매 대회 코스를 열심히 체크한다.”
2015년 LPGA 투어 진출 후 11시즌을 채웠다. 되돌아보면 어떤가.
“내가 골프를 치면서 지금까지 가장 잘한 결정이 미국 무대 도전이다. 사실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 한창 올라가는 시기였다. 굳이 미국에 안 가도 한국에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 본질에 집중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가’ ‘내가 어떻게 해야 더 성장할 수 있나’ 등을 고민했다.”
당시 주변 분위기는 어땠나.
“모두들 말리더라. 가족들도 찬성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 엄마가 말렸다. 다만 아버지는 항상 도전적이니까 ‘오케이’를 했다. 그때 도전이 가장 잘한 선택이 됐다. 어렸을 때 배우는 거랑 나중에 배우는 건 다르다. 물론 나중에 뭔가를 배울 수 있지만 어릴 때 하는 게 훨씬 습득도 빠르고 집중력에서도 차이가 난다.”
“자유로움이 각본 없는 드라마 비결…지난 5년은 색깔을 잃어버린 시간”
승부욕이 강한 편이다. 그런 부분이 난관에 부딪혀도 잘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은데.
“승부욕은 어느 정도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딱지치기를 하더라도 지고는 못 살았다. 어려움이 있으면 그냥 겪어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하고 즐긴다. 그러면서 단단해지고 커 나가는 것 같다.”
KLPGA 투어 5승과 LPGA 투어 13승을 하면서 극적인 장면을 자주 보여줬다. 어떤 순간이 가장 짜릿했나.
“롯데 챔피언십 영상은 지금 봐도 소름이 끼친다. 두 번 연속 기적은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못한다. 한화금융 클래식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두 장면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이다. 트로피보다 값지다.”
김세영은 2013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금융 클래식 최종일 3타 차로 뒤지다 17번 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다.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범한 유소연과 동타를 이룬 김세영은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2015년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선 최종일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티샷을 물에 빠트려 패색이 짙었지만 그린 주변에서 기적 같은 칩인 파를 성공하며 박인비와 동타를 이뤘고,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두 번째 샷을 그대로 홀에 넣는 이글 한 방으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밖에 2018년 LPGA 투어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에서는 72홀 최소타와 최다 언더파(31언더파 257타) 기록을 작성했다. 김세영의 모자 옆면에 숫자 31이 새겨진 이유다.
마법 같은 순간이 자주 터지는 비결은 뭘까.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약간의 자유로움 속에서 오는 필(feel) 같은 게 있다. 어떻게 보면 우당탕 한다. 잘 될 때는 말도 안 되게 잘 되고, 안 될 때는 정말 안 풀린다. 그래서 각본이 없는 드라마가 써진다.”
그런데 5년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나만의 강점을 더욱 날카롭게 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지 못하고 뭉뚝하게 하면서 타협점을 찾고, 좋은 것만 취하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내 색깔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장점도 취하면서 좀 더 똑똑하게 하려고 했다. 처음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성공이 독이 됐다.”
그 성공이라는 게 뭐였나.
“우승이 한 번 나왔다. 펠리컨 챔피언십에서. 그래서 그 우승이 제일 싫어하는 우승이다. 그 후 안 풀렸다. 그때 우승을 못했으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게 빨랐을 텐데, 성공의 맛을 본 탓에 내 색깔을 다시 찾는 데 오래 걸렸다. 난 감각으로 치는 스타일인데, 남들처럼 스마트하게 치고, 너무 교과서적인 플레이를 하려고 했던 거다.”
원래 한 번 기회를 잡으면 잘 놓치지 않는데, 최근 2~3년 사이 몇 번의 찬스를 흘려보냈다.
“6~7번 우승 기회가 왔는데 살리지 못했다. 우승을 못했을 때를 되돌아보니 오히려 집중을 너무 많이 한 게 탈이었다. 이번에는 그냥 흐름에 맡겼다. 골프는 멘탈 싸움이지 않나. 시합을 하다 보면 어떤 생각들이 계속 올라온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게 관건이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적인 생각이 튀어 나온다. 그게 컨트롤이 안 됐다. 이번엔 그냥 경기 흐름에 맡기면서 마음을 조절한 게 잘 먹혔다.”
다시 제 길을 찾는 데 누가 큰 도움이 됐나.
“아무래도 가족들이다. ‘네가 제일 잘 하는 게 골프다’ ‘이거 안 하면 뭘 할 거냐’ ‘네가 나가서 다른 걸 할 수 있을 것 같냐’ 등 동생이 가장 현실적인 얘기를 해줬다.(하하) 부모님은 미국 생활에 여전히 많은 도움을 주신다. 특히 엄마는 우리 3남매 키우느라 고생 많이 하셨다. 우리가 엄마 피를 빨아 먹고 자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엄마가 몸이 안 좋아 해남에 못 오실 수도 있었는데 오셨다. 그 상황에서 우승해서 더욱 기뻤다.”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꼽으라면.
“아버지가 많은 역할을 하셨다. 그 외에도 골프 선수는 아니어도 박찬호나 박지성 같은 선배 선수들 보면서 배운 것도 많다. 그 분들을 보면 은퇴 후에도 나름의 의미 있는 삶을 산다. 지금도 박찬호 선배님은 우리집에 매년 크리스마스 때 카드 같은 걸 보내주신다. 현역에선 은퇴했지만 여전히 팬 서비스 등을 투철하게 하신다. 그런 열정을 배우고 싶다.”
통산 상금 1500만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박인비, 양희영에 이어 세 번째다. 실감하나.
“으음, 놉! 그런 거에 솔직히 전혀 관심 없다. 미국에서 밥 사먹을 때는 물가가 진짜 비싸서 ‘상금 많이 못 벌면 힘들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긴 한다. 그렇지만 웬만하면 그런 거에 신경 안 쓴다. 돈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우선이다. 돈을 위해 그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면 골프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LPGA 통산 13승으로 한국 선수 중에선 박세리(25승), 박인비(21승), 고진영(15승)에 이어 네 번째다. 앞으로도 이루고 싶은 마법은 뭘까.
“우승을 계속 하고 싶다. 딱히 몇 승이라고 정해놓진 않았다. 내 한계 그 이상이 목표다. 예전엔 ‘난 이런 걸 이룬 후엔 은퇴할 거야’ 이런 마음이었다. 근데 이제껏 경험을 해 보니 내 삶 자체가 골퍼더라.”
그래도 원하는 타이틀이 있다면.
“딱히 없다. 예전에는 명예의 전당 입성이었는데, 목표로 하니까 안 되더라. 중요한 건 계속 성장하는 거다. 나이 40을 먹고, 50을 먹고, 60을 먹고, 골프를 할 수 있는 한 골프와 함께 성장하는 거다. 은퇴 후 삶도 계속 성장하는 게 더 가치 있을 거라고 본다.”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우승을 달성했다. 다음 메이저는 어떤 대회가 됐으면 하나.
“AIG 여자오픈, 에비앙 등 다 하고 싶다. 근데 US 여자오픈은 내겐 굉장히 어렵게 느껴진다. LPGA 투어 선수만 출전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선수들이 오고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니까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코스나 셋업도 매년 바뀐다. 그래서 US 여자오픈 우승자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US 여자오픈을 제패하면 다른 대회는 좀 더 쉽게 다가올 것 같다.”
“계속 우승하면서 나만의 색깔 있는 플레이와 매력 보여주고 싶어”
궁합이 맞는 코스는 어딘가.
“난 바닷가 쪽이다. 이번에도 오션 사이드였고, (우승을 했던) 바하마 클래식과 블루베이 LPGA 대회도 바닷가 코스에서 열렸다.”
인생의 솔 푸드는.
“입맛이 진짜 안 까다롭다. 소고기와 된장찌개에 밥, 그게 내 주식이다. 시합 때는 매일 소고기를 먹는다. 대신 200g 이내로만 먹는다. 된장찌개는 아빠가 정말 잘 끓인다.”
쉬는 것도 중요한데, 쉴 때는 주로 뭐 하나.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본다. 장르는 다양하다. 요즘은 케이팝 스타들의 영어 인터뷰를 보면서 공부도 한다. 그 외 블랙핑크나 BTS 같은 가수들이 출연한 예능도 재밌게 본다.”
내 인생의 18번 곡은.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 등 흥을 자연스럽게 돋우는 노래. 힘들 때 그런 거 들으면서 푼다. 요즘 우즈(WOODZ) 노래도 즐겨 듣는다. 드라우닝이 좋더라. 중국 시합(뷰익 상하이 LPGA) 가기 전에 우즈의 부산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예전에 댄스도 배우지 않았나.
“춤을 너무 좋아해서 2018년 스튜디오 다녔다. 근데 잘 추진 못한다. 잘 하는 거랑 좋아하는 거랑 다르더라. 초보반만 뗐다. 그때 아마추어 골퍼의 심정을 알게 됐다.(하하)”
미국 집이 있는 댈러스에 이번에 우승 경쟁을 한 노예림을 비롯해 전인지, 이민지도 사는데, 서로 자주 어울리나.
“나 빼고 다들 너무 바쁘다. 같이 라운드하면서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4명이 시간 맞추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OB 없는 드라이버 샷과 1m 퍼트 100% 성공률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OB 없는 드라이버 샷! 전자가 잘 되면 후자는 필요 없다.”
골프백 속 클럽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채는.
“아이언은 다 자신 있고 좋아하는데, 특히 4번! 4번 아이언 컨트롤을 자유자재로 하는 게 내 장점이다. 클럽 중 아이언만 유일하게 한국에서 피팅을 받는다. 피터 분의 감각이 정말 좋아서 내가 원하는 스펙을 기가 막히게 찾아준다. 항상 고맙다.”
재산 목록 1호는.
“내 몸이다. 몸 관리에 신경 쓰려고 한다. 예전에는 살을 많이 빼기도 했다. 예뻐 보이고 싶어서. 그래서 잠깐 예뻐 보일 때가 있었다. 올해의 선수에 오르고 우승도 많이 한 2020년이 내 리즈 시절이다. 인생에서 가장 예뻐 보이는 나이이기도 했다. 당시 사진을 앞으로 평생 쓰려고 한다.(하하)”
몸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그 전에는 트레이너 케어를 안 받았다. 왜냐면 하루 자고 일어나면 리커버리가 됐으니까. 근데 지금은 안 되겠다 싶더라. 트레이닝이 굉장히 중요한 파트가 됐다. 그 전엔 트레이너 분들의 진가를 몰랐다. 작년에도 허리 때문에 US 여자오픈을 기권하고 여름 내내 고생했다. 올해도 사실 전반기에 쉴까도 했었다. 그런데 트레이너 선생님은 몇 가지 주의만 하면 괜찮다며 뛰라고 하더라. 진짜 시즌 치르면서 완치됐다.”
옷장에는 빨간 바지가 몇 벌이나 있나.
“예전엔 20~30벌 있었다. 요즘엔 많이 안 보인다. 솔직히 이번에 입고 우승 못하면 더 이상 안 입으려고 했다. ‘괜히 빨간 바지 입고 무슨 창피야’라는 마음이었는데, 우승을 한 덕에 앞으로도 계속 입어야 할 것 같다.”
골프 외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뭔가 이루는 일을 해 보고 싶다. 축구도 잠깐 했었는데 부상 때문에 안 하게 됐다. (김)효주와는 새벽 2시까지 탁구 친 적도 있다. 사무직도 해 보고 싶다.”
옆에 있던 동생이 말했다. “사무직? 하루도 못 버텨. 언니가 아니라 옆 사람이.(하하)”
남자 친구는 없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다 도망가더라.”
아버지 말로는 초등학교 때 가방 들어주던 남자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걔네들은 무서워서 그런 거다. 안 그러면 내가 자기 집 쫓아갈까봐.(하하) 그 친구들과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 중·고등학교 친구들도 많다. 오히려 남자들과 친하다. 여자 친구들과 못했던 얘기들을 그 친구들과는 할 때도 있다.”
김세영 하면 팬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 선수이고 싶나.
“나도 궁금하다. 어떤 선수로 기억해주길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 분들에게 나만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와 매력을 계속 보여주고 싶다. 그걸 통해 그 분들이 골프에 흥미를 더 가졌으면 한다. 그게 나의 재미다.”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이나 영감을 주고 싶나.
“조언보다는 후배들이 나를 보고 ‘아,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라고 느꼈으면 한다. 사실 내가 어떤 얘기를 한다고 해서 듣지는 않을 거다. 각자 생각이 있으니까. 근데 내 사소한 행동을 보고 많은 생각은 할 거다. 내가 계속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면 후배들도 좋은 방향으로 갈 거다. 나도 예전에 (박)세리 언니나 (박)인비 언니한테서 특별히 어떤 얘기를 들은 건 없지만 언니들이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힐끔힐끔 보면서 영감을 얻고 성장했다.”
What’s In The Bag?
드라이버: 테일러메이드 Qi35(9도)
페어웨이우드: 테일러메이드 Qi10 3번(13.5도), 5번(18도)
하이브리드: 타이틀리스트 GT2 4번(21도)
아이언: 미즈노 미즈노프로 S-3(4번~PW)
웨지: 타이틀리스트 보키 디자인 SM9(50, 56도)
퍼터: 타이틀리스트 스코티카메론 뉴포트2(GSS)
볼: 타이틀리스트 프로V1
PROFILE
출생: 1993년 | 투어 데뷔: 2011년 | 소속: 스포타트
주요 경력: KLPGA 투어 5승, LPGA 투어 13승(메이저 1승)
2025년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서 LPGA 투어 통산 13승 달성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 공동 9위
2020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서 메이저 첫 우승, 올해의 선수
2018년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서 LPGA 투어 72홀 최다 언더파, 최소타 기록(31언더파 257타)
2016년 리우 올림픽 공동 25위
2015년 퓨어실크 바하마 LPGA 클래식서 LPGA 투어 첫 우승, 신인왕
2013년 롯데마트 여자오픈서 KLPGA 투어 첫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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