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평소 내부 출입이 제한된 경복궁 근정전 안에 들어가 임금의 자리에 앉았던 사실이 확인됐다.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유산청은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2023년 9월 12일 김건희 씨가 경복궁 근정전을 방문했을 당시 용상(어좌)에 앉은 사실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경복궁 방문은 광화문 월대 복원과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맞이 행사 준비와 관련된 것이었으나, 근정전 내부 관람은 원래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궁능유적본부 산하 경복궁관리소의 ‘상황실 관리 일지’에 따르면 김 여사는 이날 오후 1시 35분부터 3시 26분까지 약 2시간 머물렀다. 일지에는 김 여사를 ‘VIP’로 표기하고, 협생문을 통해 입장해 근정전·경회루·흥복전 등을 둘러봤다고 기록돼 있다. 이날은 경복궁의 정기 휴궁일(화요일)이었다.
국가유산청은 “당시 근정전 안에는 김건희 씨와 함께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 최응천 전 문화재청장(현 국가유산청장), 황성운 전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이 있었다”며 “대통령실 요청으로 최 전 청장이 지시해 궁능유적본부와 경복궁관리소가 준비했다”고 밝혔다.
또 “배석한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김건희 씨가 용상에 앉은 사실이 맞다”면서도 “어좌는 재현품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해당 재현품이 언제 제작된 것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근정전은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에서 가장 격식을 갖춘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던 장소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됐으며, 현재 일반인은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국가유산청은 “어좌는 왕이 신하들의 조회를 받거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등 공식 행사 때 앉았던 자리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며 “역대 대통령 중 근정전 어좌에 앉은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여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신실 내부를 외국인과 함께 둘러봤다는 논란에 이어 근정전 내부에 들어가 어좌에 앉은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국가유산 ‘사적 이용’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질의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은 당시 김 여사를 수행했던 정용석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에게 “근정전 어좌에 왜 앉았느냐,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느냐”고 질타했다. 김교흥 위원장도 “그렇게 중요한 상황을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지적했다.
정 사장은 “당시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 경복궁과 석조물 일대를 설명했다”고만 답했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수행하느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더불어민주당 조계원 의원의 질의에 “모든 국민이 생각하는 것처럼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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