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을 당해 피눈물 흘리고 있는 국민이 몇 명인데… 어떻게 범죄자들에게 ‘구출’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나요?”
지난해 보이스피싱 조직의 연락 한 통에 한 푼 두 푼 모은 쌈짓돈을 모두 잃은 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60대 김 모 씨는 캄보디아에 구금돼 있던 한국인 ‘피해자’ 64명이 ‘구출’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일삼다 캄보디아 경찰에 붙잡힌 이들을 송환하기 위해 전세기까지 동원한 정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김 씨는 “캄보디아로 관광을 갔다 납치되거나, 사기를 당한 진짜 피해자들은 따로 있지 않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가담했다가 이민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4명은 18일 전세기 편으로 국내로 송환됐다. 이들은 고국 땅을 밟자 마자 체포돼 전국 각지에서 분산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체포 시한인 20일 새벽 전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를 두고 정치계에서는 찬사가 이어졌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힘내세요”라고 남겼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 역시 프놈펜 시내의 한 범죄단지에서 한국인 3명의 신병을 추가 확보했다며 “감금됐던 우리 청년 3명을 구출해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데려온다”고 밝혔다.
공공연히 ‘구출’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지만, 이들의 송환이 과연 ‘구출’에 해당하는 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구출(救出)은 ‘위험한 상태에서 구하여 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문으로는 ‘불구덩이 속에서 인명을 구출하다” 등이 제시돼 있다. 즉 ‘구출’은 대상이 비자발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 보호가치가 있는 피해자일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인 것이다.
송환된 이들 중 대부분은 구인 광고 글을 보고 자발적으로 캄보디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이 할 일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고액의 월급이나 현지에서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에 혹한 경우도 있다. 대다수가 한국에서도 피의자 신분이며 일부는 인터폴 적색수배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경찰에 붙잡히고 나서야 자신을 ‘감금 피해자’라고 호소했으며, 전세기에 탑승하기 전까지 캄보디아 이민국에 구금돼 있었다. 정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었다면 “구금 중인 한국인들이 자진해 귀국을 거부했다”는 캄보디아 내무부의 발표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취업난에 시달리다 못한 청년들이 부득이하게 범죄조직에 몸담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전직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이미 한국에서도 범죄에 발을 들였던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진짜 구출해야 할 대상은 범죄 조직에 합류할 의사 없이 캄보디아를 방문하던 중 납치·감금된 소수의 국민이다. 이들은 아직 캄보디아 전역에 퍼져 있는 다른 범죄단지에 갇혀 있다. 일부는 수사당국의 단속을 피해 거처를 옮긴 범죄조직과 함께 다른 국가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 손길을 누구보다 절실히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정부는 이들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구출 대상도 있다. 캄보디아 범죄조직에 의해 자산을 갈취당한 사기 범죄 피해자들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누적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8000억 원을 돌파했다. 피해자들의 삶은 멍들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구제는 이뤄지지도 않는 실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가해자들을 구출했다고 생색을 낼 것이 아니라 정말 피해 입은 국민들을 구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피해 구제 대책의 하나로, 캄보디아 정부와 협력해 현지 범죄조직이 국내 피해자들을 상대로 챙긴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vegemin@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