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2m입니다. '이퀄라이징(두 손가락으로 코를 막은 채 숨을 강하게 쉬는 동작)'을 했는 데도 고막에 통증이 느껴지면 즉각 손을 들어 알려주셔야 합니다."
15일 취재진이 찾은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 12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대형 챔버(고압산소치료 기기)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 무거운 철문이 닫혔다. 마치 잠수함 안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기압이 오를수록 비행기 이착륙 때보다 훨씬 강한 압력이 귀를 짓눌렀다. 챔버 밖에서 실시간 모니터링 중인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기압 평형(이퀄라이징)을 맞추다 보니 수심 10미터(2기압)에 도달했다. 안내방송에 따라 일제히 마스크를 쓰자 100% 순도의 산소가 호흡기로 스며들었다. 체험 전 고압산소의 효능에 대한 교육을 열심히 들은 탓일까. 평소보다 숨쉬는 게 편하다고 느껴졌다.
한강성심병원은 국내 대학병원 중 유일하게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화상전문병원이다. 2023년 화상 환자를 위한 다인용 체임버 두 대를 들여오며 고압산소치료센터를 열었던 이 병원은 2년 여만에 누적 치료 건수 1만 례를 돌파했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극히 보수적인 기준을 통과한 입원 환자로 한정해 운영했음에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도입 첫해인 2023년 2189건에서 2024년 4612건으로 2배 이상 뛰더니 올해 9월까지만 3227건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 중 99.5%가 화상 및 재건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병원이 올해 7월 세 번째 챔버를 도입한 배경이다. 이로써 한강성심병원은 총 36명의 환자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압산소치료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단일 의료기관이 이 같은 고압산소치료 인프라를 갖춘 건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고압산소치료는 기압을 평소의 2~3배까지 높인 밀폐된 챔버 안에서 100% 고농도 산소를 흡입하는 치료다. 대기보다 센 압력을 가하면 적혈구와 결합하지 않아도 산소분자 그대로 혈액 속에 녹아든다. 평소 도달하기 어려운 말초혈관과 세포까지 산소분자가 잘 전달될 수 있어, 세포의 재생과 성장을 촉진하고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데도 도움을 준다. 화상 환자의 피부 이식 후 생착률을 높여 회복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당뇨병성 족부궤양 등 난치성 상처는 물론 방사선치료 후 발생한 조직 괴사, 돌발성 난청 등에 대한 치료효과가 입증돼 건강보험도 적용되고 있다. 1회 치료비는 25만 원 상당이지만, 입원 환자는 20%만 부담하면 되고 산정특례 대상은 본인부담률이 최대 5%까지 낮아진다. 그 밖에 항암치료 후 컨디션이 저하된 암 환자들이나 만성 피로증후군, 탈모 등의 보조치료로도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다. 일부 클리닉에서는 항노화나 미용 효과를 겨냥해 활용하기도 한다.
한강성심병원은 입원 환자 전원을 스크리닝해 고압산소 치료 대상을 선별하는 차별화된 시스템을 갖췄다. 효과와 안전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압산소치료의 적용 대상으로 판명되면 1회당 2시간 이상 치료를 받도록 운영한다. 한강성심병원은 36인 동시 치료 시스템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외래 환자 대상으로도 치료 기회를 열었다. 광역 재난대응 거점병원으로서의 역할과 지역사회 의료 접근성 확대에 기여하는 한편, 국제공동연구 등을 확대해 아시아 최고 수준의 고압산소치료 전문기관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포부다.
허준 병원장은 "화상 환자 뿐 아니라 암환자, 면역저하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치료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고압산소요법의 새로운 활용 범위를 발굴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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