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무역 갈등이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글로벌 경제가 시계 제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화 메시지를 발신하자 중국 측도 대화의 문을 열어뒀으나 14일 양국은 상대국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것으로 관측되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협상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공세 수위를 더욱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중국 교통운수부는 이날 ‘미국 선박에 대한 선박 특별 입항료 부과 시행 조치’를 발표하고 미국 선박에 대한 입항 수수료 부과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미국 기업·단체·개인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선박, 미국 기업·단체·기업이 직간접적으로 2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 또는 조직이 소유·운영하는 선박이다. 미국 국기를 게양한 선박,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도 이날부터 중국 항구에 정박하는 경우 순톤당 400위안(약 8만 원)을 내야 한다.
이번 조치는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4월 중국 기업이 운영하거나 소유한 선박에 순톤당 50달러(약 7만 원)의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고 이날부터 시행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조선·해운 산업을 견제하고 미국산 선박 건조를 장려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에 나섰다.
이날 중국 상무부는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다섯 곳을 겨냥한 제재 조치를 발표하며 미중 갈등의 불똥이 한국 기업으로도 옮겨붙었다. 미중 양국의 상호 입항 수수료 부과와 중국이 한화오션의 미국 5개 자회사 제재에 나서며 양국 간 신경전은 고조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9월 희토류 관련 추가 수출통제를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0일 중국에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핵심 소프트웨어 수출을 통제하겠다며 반격에 나섰다. 중국도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의 자동차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오토톡스 인수에 제동을 걸고 반독점법 위반 조사에 나서는 등 양측의 공방은 날이 갈수록 격화됐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APEC 정상회의에 맞춰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던 미중 정상회담이 무산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훌륭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며 “중국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도우려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면서 상황 관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측도 미국과 무역 회담을 지속하고 있다며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이날 “양국은 중미 경제·무역 협상 메커니즘 틀 안에서 계속 소통을 유지하고 있고 어제도 실무진 회담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전날 “주말 사이에 미중 양국 간에 상당한 소통이 있었다”며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한편 미국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강화하면 중국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선트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세계 경제를 둔화하려 한다면 자신들이 가장 크게 다칠 것”이라고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를 꼬집었다. 앞서 중국은 최근 미국에 가하는 조치를 이미 예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FT는 미국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리청강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 겸 부부장이 8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매우 격앙된 상태와 공격적인 어조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미국이 ‘지옥불’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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