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여명] 경제부총리가 안 보인다

서일범 경제부장

부동산 대책·한미 협상서도 존재감 없어

'해체' 앞두고 기재부 전체 정체성 흔들

컨트롤타워 역할 못할땐 경제 위기 초래

조직 사명감·DNA 깨울 소명 되새겨야





이번 주 발표될 3차 부동산 대책을 앞두고 12일 열린 고위 당정협의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과문한 탓일지는 모르나 우리나라 경제를 구성하는 핵심 중 핵심인 부동산 대책을 다루는 자리에 경제부총리가 빠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여당 국토교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날 “부동산 세금 문제를 두고 기재부와 국토교통부 사이에 의견 일치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 장관에게 부총리를 겸임하게 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기재부의 나라(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발언)”여서가 아니라 부처 간 이견이 있으면 교통 정리를 하라는 취지다. 기재부의 정책 조정 기능이 삐걱대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구 부총리가 불참한 이날 부동산 대책 협의는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하에 진행됐다. 정부는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르면 이번 주 3차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우리 경제의 운명을 가를지도 모르는 한미 통상 협상에서도 구 부총리의 존재감은 흐릿하다. 총괄 컨트롤타워를 대통령실에 내주고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 사이에 끼어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이를 두고 3500억 달러 투자펀드와 같은 핵심 의제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이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러트닉 장관의 협상 파트너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므로 부총리가 나서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다.

이명박 정부 말기 때부터 기재부를 출입했던 경험에 비춰보자면 황망한 이야기다. 코로나19로 마스크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제한으로 공급망 마비 경고음이 터져 나왔을 때, 그 외에도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다양다종한 국가의 경제위기 때마다 총대를 메고 나선 곳이 다름 아닌 기재부였기 때문이다. 기재부 어디에 마스크국(局) 반도체과(課)가 있어 이런 위기 때마다 제일선에 나섰다는 말인가.



기재부 내부에서는 이미 비상벨이 울려 퍼진 지 오래다. 가뜩이나 내년에 예산실을 떼어내는 부처 해체를 앞둔 상황에서 벌써부터 조직 전체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기재부 출신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최근 몇몇 후배들을 만나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며 “과거에도 ‘부총리가 안 보인다’는 레토릭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직 전반에 목표 의식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기재부 노조가 진행한 내부 설문조사에서는 “부총리가 사퇴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기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순전히 구 부총리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애초 기재부를 해체해 최대한 힘을 빼겠다는 게 대통령의 국정과제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말기 기재부 출신 관료들이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반대해 정권을 내줬다는 음모론은 여당과 ‘어공’들 사이에서 신앙에 가깝다.

문제는 흐려지는 부총리의 존재감이 가져올 결과물이다. 당장 성장 전략이 훼손될 수 있다. 기재부가 8월 내놓은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은 사실 ‘경제정책’이 아니라 ‘2026년 예산안’에 가깝다. 우리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며 내놓은 대책 대부분이 국가 재정을 인공지능(AI)에 투입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편성하기는 쉽지만 집행하고 감시하기는 어려운 게 예산의 속성이다. AI 예산이 성장의 마중물이 되지 못하면 그 책임은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중 누가 지는 것인가. 위기 대응도 마찬가지다. 한미 통상 협상이나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 모두 자칫하면 우리 경제의 목줄기를 눌러 혼수 상태로 몰아갈 수 있는 약점들이다.

기재부가 그동안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것은 그들의 두뇌가 비상해서가 아니라 책임지고 일을 해내는 DNA를 사무관 시절부터 수십 년에 걸쳐 학습해온 덕분이다. 그것이 기재부의 유전자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관료들의 소명이다. 이제 구 부총리에게 그 DNA를 다시 일깨우고 지켜가야 하는 숙명이 주어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