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값이 또 심상치 않습니다. 상반기에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가 집값 상승세를 이끌었다면, 요즘은 한강 벨트라고도 불리는 마포·성동·광진구가 그 자리를 꿰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다섯째 주(9월 29일 기준)에 서울에서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3대장’이 바로 이 세 곳이었습니다. 전주 대비 상승률이 성동구는 0.78%, 마포구는 0.69%, 광진구는 0.65%에 달했죠.
눈에 띄는 것은 9월 둘째 주(9월 8일 기준)부터 이들 지역의 상승세가 더 탄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언론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9·7 부동산 공급 대책에 담긴 규제 강화 신호가 막차 매수 심리를 부추겼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죠. 특히 수요를 자극한 내용 중 하나로 ‘국토교통부 장관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권한 확대’가 꼽히고 있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뭐길래, 시장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요?
토지거래허가구역, ‘실거주’ 강제하는 초강력 규제…서울의 27% 해당
토지거래허가구역(이하 토허구역)은 일정 규모 이상의 땅과 주택을 거래할 때 관할 기초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투기적 거래가 나타나거나 그러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설정됩니다. 한 마디로 투기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부동산에 대해서만 거래를 허락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개입이 이뤄질까요? 주택에 한해서 보자면요. 토허구역으로 지정되면 2년간 의무적으로 실거주를 해야 합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불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매수자는 자치단체에 내가 이 집을 왜 사려 하는지, 유주택자라면 기존 주택은 어떻게 처리(매도·임대)할 것인지 소명서를 내야 합니다. 구청이 나중에 실거주 여부도 검사합니다.
복잡하고 번거롭죠? 이처럼 토지거래허가제는 주민의 재산권 행사를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매우 강력한 규제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집값을 잡는 수단으로는 잘 쓰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2020년 5월에 정부가 용산정비창(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지 일대를 토허구역으로 묶기 시작한 이후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개발 호재가 예상되는 지역에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지금은 서울의 주요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압구정·목동·여의도·성동), 강남 3구와 용산구 내 모든 아파트, 조합설립인가를 하지 못한 신속통합기획 및 모아타운 선정지 등이 토허구역으로 묶여 있습니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165.23㎢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27.3%에 달합니다.
앞으론 국토장관도 ‘집값 과열’ 이유로 지정 가능…한강벨트 수요 부추겨
토허구역은 왜 별안간 9월 들어 한강 벨트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 시작한 것일까요? 위에서 말씀드렸듯 9·7 대책에 국토부 장관의 토허구역 지정 권한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행 법상 국토부 장관은 두 개 이상 시·도에 걸쳐 있거나, 국가 개발사업이 시행되는 경우에만 토허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성동구 집값이 너무 올랐으니 구 전체 아파트를 토허구역으로 묶겠습니다’ 같은 조치는 지금은 서울시장만 취할 수 있는 거죠.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 국토부 장관도 동일 시·도 내에서 허가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부동산거래신고법을 개정할 예정입니다. 국토부는 9·7 대책에서 개정 이유에 대해 “동일 시·도 내에서 이상 과열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선제적 수요 관리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국토부 장관의 적기 대응이 곤란하다”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이 대목을 둘러싸고 수요자들 사이에서 ’정부가 한강 벨트를 규제 타겟으로 보고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한 것이지요. 한강 벨트는 원래부터 선호 주거지였는데, 강남3구와 용산구가 올해 3월 토허구역으로 묶인 후 수요가 더 몰리는 형국이었으니까요. 9·7 대책에 담긴 규제지역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강화 같은 내용도 이런 예측에 힘을 더했고요.
장기적 효과는 글쎄, 인근 지역 ‘풍선 효과’는 뚜렷…지정보다 해제가 더 어려워
토허구역이 ‘집값 잡는 요술 방망이’처럼 쓰이다 보니 의문이 생깁니다. 토허구역은 과연 집값 안정 효과가 있을까요?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무작정 지정해도 되는 걸까요?
일단 집값 안정 효과부터 보겠습니다. 워낙 첨예한 주제이다 보니 관련 연구도 많이 진행됐는데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토허구역 지정이 단기적으로 집값을 억제하고 거래량을 끌어내릴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그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토허구역 지정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지난해 실시한 연구 용역의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한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4년 넘게 토허구역으로 묶였던 잠·삼·대·청(강남구 삼성동·대치동·청담동, 송파구 잠실동)의 집값 안정 효과가 지정 2년 후 거의 사라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연구팀은 “서울시 전체의 관점에서 주택시장은 거시 금융 요인 및 부동산 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허가 제도의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죠.
뿐만 아닙니다. 토허구역 지정으로 인해 주변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3년 발표한 ‘주택시장과 규제’ 보고서를 보면, 토허구역 지정 후 인근(5㎞ 이내) 지역은 더 먼 원거리 지역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오르는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두고 문윤상 KDI 연구위원은 “토허구역과 같은 핀셋 규제로 오히려 인근의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대체 효과가 나타났다”며 “토허구역 지정 효과로 주택시장에 왜곡이 초래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죠.
토허구역은 지정하는 것보다 해제하는 게 더 어렵다는 사실도 눈여겨봐야 하는 지점입니다. 서울시는 올해 2월 잠·삼·대·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했습니다. 2020년 6월 지정 후 무려 4년 반 만의 일이었죠. 그런데 해제 직후 이들 지역 집값이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서울시는 한 달 만인 3월 19일에 토허구역을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 아파트로 확대 재지정했지요.
올 초 토허구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동은 토허구역 해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지정 효과는 시간이 흐르면 얕아지지만, 해제 후 단기적인 집값 상승 또한 피하기 어려우니까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서울시가 주택 공급, 금리 등 거시 환경을 면밀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었죠.
이처럼 토허구역은 지정도, 해제도 쉽게 결론내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김윤덕 국토부 장관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규제 확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차분하게, 종합적인 면을 두루 검토해 대책을 발표하겠다”며 '속도 조절'을 시사했지요. 정부가 바로 토허구역으로 가기 보다는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등) 확대나 다른 금융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뜨거운 한강 벨트 부동산 시장에 대해 정부가 어떤 해법을 들고 나타날지 관심을 기울여볼 만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