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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때 '인생 로드맵' 결정하라니…"고교학점제, 원점 재검토하라"

고교학점제 개편안, 교원 업무부담 완화에 초점

수험생, 내신·수능에 대학별 선택과목도 챙겨야

적성·흥미 보다 내신성적 잘받는 과목이 1순위

학생들 "학업 스트레스 극심…정책 재검토 필요"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2025년 제6차 시도부교육감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교육부




정부가 일선 교원의 업무부담 완화를 골자로 한 ‘고교학점제’ 시행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정책 대상자인 학생들의 요구는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학생들은 어떤 과목을 이수했냐에 따라 지원가능 대학 및 학과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고교 학점제가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현행 ‘상대평가제’ 하에서는 흥미나 진로가 아닌, 결국 내신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 선택이 강요될 수밖에 없어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만 높였다고 지적한다.

3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가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을 내놓은 지 열흘 가량이 지났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고교 학점제 자체를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는 비판이 상당하다.

실제 정부가 지난달 25일 내놓은 개선책 대부분은 교사의 업무 부담 경감에 초점이 맞춰졌다. 교육부는 현행 1학점당 5시수였던 예방·보충 지도 시수를 1학점당 3시수 이상으로 개편해 예방·보충 지도 시간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또 올 하반기부터 최소성취수준 보장 지도와 관련한 구체적 지침을 각 시도교육감이 정하도록 해 학교별 자율성을 강화했다. 출석률 3분의 2 미만 학생에 대한 추가 학습은 100%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가능하도록 했으며 세부 능력 특기 사항 기재 최대 글자 수를 기존 1000자에서 500자로 줄였다.

교원도 대거 충원한다. 교육부는 2026학년도 공립 중등신규 교사 임용시험 선발 인원을 7147명으로 확정했다. 이 같은 선발 규모는 올해 대비 1643명 늘어난 수치이며 앞서 예고한 2026학년도 모집공고 인원(4797명)과 비교해서는 2350명이 늘었다. 교원 3단체가 전국 고교 교사 41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교학점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 1인당 2~3개 과목을 담당하는 비율은 73%를 기록했으며 학생부 기록 부담에 대해 ‘과도하다’고 응답한 비율 또한 90.7%에 달한 만큼 ‘교사 달래기용’ 교원 증원 정책인 셈이다. 지난달 취임 일성으로 ‘교권보호’를 최일선에 내세운 최교진 교육부 장관의 정책 철학을 반영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이 같은 ‘땜질식’ 처방에 고교학점제 대상 학생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행 고교 학점제 하에서 고교생은 3년 간 총 192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또 1학년은 상담 및 공통 과목 위주의 수업을 들으며 진로를 탐색하며 2학년부터 진로에 맞는 선택과목 중심으로 수업을 듣는다. 결국 고교 1학년은 본인의 평생 진로를 좌우할 전공 선택을 1학년말에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고교 2학년 말이나 3학년에 희망 전공이 바뀔 경우 필요 과목 미이수 등을 이유로 대학 진학이 어려울 수 있어 사실상 1학년말에 ‘인생 로드맵’을 만들어야 구조다. 각 대학이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자율전공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고교학점제는 되레 고1 때 전공 선택을 강요하고 있어 시대 흐름과 역주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흥미나 적성보다는 얼마나 내신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지가 고교학점제 하에서 과목 선택의 핵심 조건”이라며 “특히 자연계열 학생은 고교학점제 전공연계 선택과목과 관련한 경우의 수가 복잡해 입시컨설팅이 필수”라고 밝혔다. 고교 학점제는 내신성적 및 수능성적의 절대 평가 외에 특수목적고 및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전제로 설계됐다. 반면 관련 전제조건이 하나도 구현되지 않은 상황 속에 시행된 고교학점제는 이 같은 ‘태생적 한계’로 고교 현장과 계속 충돌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 고1 학생부터 적용하는 ‘내신 5등급제’가 고교학점제를 더욱 파행으로 몰고 있다. 현행 고교학점제 하에서 상위 10%에 들지 못하면 2등급 이하의 평가를 받게 된다. 내신 1등급을 받지 못하면 이른바 ‘의치한약수’ 진학은 커녕 서울 소재 대학 진학이 힘들 수 있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적성보다는 성적 획득 용이성이 과목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고교 자퇴생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교 학점제가 학업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고교 학점제에 따른 잦은 이동 수업으로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기 힘들다’는 지적 외에 빈번한 교실 이동으로 친구간의 유대감 형성이 어려워짐에 따라 교우관계 문제를 걱정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이 같은 고교 학점제 문제는 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의 경우 학생수와 교원이 많은 만큼 웬만한 과목 수강은 학교 한곳에서 가능한 반면, 지방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일부 지역 학생들은 인근 고교에 개설된 특정 과목을 듣기 위해 택시를 타고 수십분을 이동해야 하는 등 고교학점제가 ‘수도권과 지역간의 교육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학생들은 기존의 내신과 수능 대비 외에도 고교학점제에 따른 대학별 선택과목까지 대비해야 해 학습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며 “대학별 지정과목 등의 변수 때문에 수험생이 고교학점제 상황에서는 대학 결정 시 보다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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