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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V 사준다” 꾀임→실패로 끝난 유괴…어머니의 눈물[안현덕의 LawStory]

낯선 20대男 따라간 곳은 야산

몇 시간만에 풀어주기는 했지만

섭뜩한 기억…연이은 유괴 시도

미수라지만, 학부모 불안감은 ↑

미수 그치더라도 강력 처벌해야

서울 서대문구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아동을 납치하려 한 20대 남성 일당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의 오후. 유치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20대 초로 보이는 낯선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엄마가 근처에 있는데, 같이 오라고 하셨다”는 내용이었다. 뒷걸음치며 경계하자, 곧바로 “로보트 태권V도 같이 사서 오라고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조금 망설이다가 아저씨 자전거에 올라탔다. 10분 정도 가다 보니, 그리 높지 않은 산에 도착했고, 함께 숲 길을 걸어 올라갔다.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아저씨는 연신 담배만 피웠다.

“담배는 몸에 안 좋아요”, “담배 피면 나쁜 사람인데요.”

쉬지 않고 떠드는 아이의 목소리만이 고요한 숲 속의 적막을 깼다. 숲을 여기 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저녁에 가까워졌다.

“정말 시끄럽네, 내려가라”

침묵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소리쳤다. 놀란 마음에 혼자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홀로 되니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처음 보이는 부동산을 무작정 들어갔다. 그리고 “집을 잃어버렸다”며 울먹이며 말했다. 집 전화번호도 기억나지 않았다. 부동산 주인이 가방에 적힌 유치원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협박 등 전화 한 통조차 오지 않았다.

최근 줄을 잇고 있는 유괴 미수 사건에 떠오른 기자의 어릴 적 기억이다. 당시만 해도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기억의 조각을 맞추다 보니, 무서운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때 아저씨가 다른 생각을 했다면.’

기자에게 있어 이미 수십 년 전 사건이지만, 유괴 범죄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유괴를 시도했던 사건이 서울 서대문구·관악구, 경기 광명시 등에서 이어지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괴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인 만큼 현행 법에서 엄중히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287조에 따르면, 미성년자를 악취 또는 유인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미수범도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특히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범죄가중법)에 따라 범죄 목적에 따라 가중 처벌할 수 있다. 해당 법에 따르면, 미성년자 부모의 우려를 이용해 재산상 이득의 취할 목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살해는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폭행이나 상해, 감금 또는 가혹한 행위를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게다가 재물, 살해 등을 목적으로 범죄를 예비하거나 음모한 사람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으나 최근 판례에서는 유괴 미수범에 대해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미성년자를 겨냥한 범죄라는 점에서 미수에 그쳤더라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질 경우 ‘깨진 유리창 이론’과 같이 범죄만 늘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 출신인 김은정 법무법인 리움 변호사는 “대부분 범죄의 미수 사건에서 형량이 낮춰지기는 하지만, 유괴 범죄는 상황에 따라 좀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며 “저출산 시대에 각 가정에 아이들이 한 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제 사건의 목적 등을 수사·재판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 변호사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미성년자를 데리고 가는 등 유괴 범죄 유형에 따라 미수범이라고 하더라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범죄의 목적이나 상황 등까지 고려해 처벌 수위를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이혼의 증가…양육권 분쟁에 따른 갈등→유괴 고소’로 이어지는 상황은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즉, 이혼으로 양육권이 없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이가 보고 싶어 다른 쪽이 모르게 데려가 식사를 하거나 집에 함께 머무는 등 상황은 별개로 하고, 가족 관계 등 관련성이 없는 이들의 범행은 분리해 철저히 수사해 처벌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 13세 미만 미성년자 약취·유인죄에 대한 양형기준에서도 ‘양육권이 없는 부모나 친족의 범행으로 범행 동기를 참작할 사정이 있거나, 의사 능력이 있는 피해자 본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는 형을 낮출 수 있는 감경 사유로 담고 있다. 자의로 피해자를 안전한 장소에 풀어주거나, 자수, 소극 가담, 공탁 등 피해 회복, 진지한 반성이 있으면 감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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