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 제도 상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자발적 이직’에 대해서도 실업급여(구직급여)를 1회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실업급여 중독’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반복·부정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실업급여제도의 근간마저 흔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1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는 2027년 시행을 목표로 자발적 이직자 청년에게 생애 1회 실업급여를 주는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이 제도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도 전일 국무회의에서 “자발적 이직이라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직장 내 괴롭힘 등 청년 스스로 못 견뎠던 점도 있다”며 제도 도입 필요성을 설명했다.
자발적 이직자에 대한 1회 실업급여 지급 제도는 심각한 청년 고용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 고용은 구조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청년 고용률은 16개월째 하락세다. 쉬었음 청년은 5년 동안 약 10만 명이나 늘면서 청년 인구의 5.5%를 차지한다. 이들이 취직을 포기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첫 직장에 대한 불만이 꼽힌다. 지난해 청년의 첫 직장 근무 기간은 평균 1.6개월에 그쳤다. 퇴사 사유를 보면 절반이 근로 여건에 대한 불만족이다.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금전적 지원(실업급여)을 통해 청년의 재취업 의지를 높이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하지만 자발적 이직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은 원칙적으로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 실업급여는 갑작스러운 실직자에 대한 생계 안정과 재취업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실업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의 재정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만큼 건전하지 않다. 고용보험기금의 실업급여 계정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약 3조 5941억 원이다. 기금에서 상환해야 할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금을 고려하면 4조 1267억 원 적자 상태다. 근로자와 사업주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실업급여를 정부가 청년 고용 정책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실업급여는 지급액이 추세적으로 오르고 있는 최저임금과 연동되는 구조(하한액)로 설계된 탓에 실업급여에 의존하거나 부정하게 수급하려는 유인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업급여는 반복수급이 늘면서 제도 자체가 일종의 모럴해저드의 상징처럼 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하지만 수급 자격이나 수급 횟수처럼 실업급여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기금 재정까지 나쁜 상황에서 실업급여를 청년 고용 정책에 활용하는 것은 선심성 행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가 재정 지원을 펴려면 실업급여가 아닌 일반 재정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청년 고용 대책인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 추진안에서 자발적 이직자 1회 실업급여제도 추진안을 담았다가 최종 단계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제도는 국정과제에 담겨 현 정부 임기 내 시행이 유력하다. 정부는 이날 대책에서 매년 15만 명 규모의 장기 미취업 청년을 선별해 심리 상담부터 취업 알선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장기 미취업 청년 규모를 산정해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인공지능(AI) 인력 지원 사업을 확대해 기업이 원하는 청년 인재를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산업재해 감축, 임금체불 근절 등 근로 조건을 개선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청년 연령을 현행 29세에서 34세로 늘려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김 장관은 이날 정책을 발표하면서 “(대책 이름인) ‘보장제’는 청년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일터에서 존중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겠다는 것”이라며 “청결한 화장실, 냉난방 같은 기본적인 환경이 모든 일터의 상식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