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한국 시간) 미국 조지아주 이스트레이크GC(파70)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PO)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4000만 달러). 우승을 결정하는 짧은 퍼트를 넣고 두 팔을 번쩍 든 토미 플리트우드(34·잉글랜드)의 모습은 끝 모를 실패 끝에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베테랑 산악인 같았다. 트레이드 마크인 장발과 듬성듬성한 수염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다.
유럽의 강자지만 미국 무대에서는 지독하게도 승운이 따르지 않아 화제였던 플리트우드가 오랜 저주를 깨고 마침내 트로피를 들었다. 2025시즌을 사실상 마무리하는 우승 상금 1000만 달러(약 138억 원)짜리 ‘왕중왕전’에서 첫 우승이 터져 더 극적이었다.
16언더파의 2타 차 공동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플리트우드는 버디 5개와 보기 3개로 2타를 줄여 18언더파 262타로 마쳤다. 15언더파 2위 그룹의 패트릭 캔틀레이(미국)와 러셀 헨리(미국)를 3타 차로 제친 넉넉한 우승. 캔틀레이는 2021년 페덱스컵 챔피언이고 헨리는 PGA 투어 5승을 올린 선수다.
2018년부터 PGA 투어에 무게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플리트우드는 ‘163전 164기’를 이뤘다. PGA 투어 164번째 출전 대회에서 처음 정상에 선 것이다. DP월드 투어(옛 유러피언 투어) 7승이 있는 그는 신기의 아이언 샷으로 부러움을 사는 선수다. 국내 투어 선수들 중에도 플리트우드의 아이언 기술을 연구하고 따라 하려는 이가 여럿이다.
그런 기술을 갖고도 PGA 투어에서는 163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우승이 없었다. 준우승 6회와 3위 6회 등 톱10 진입 횟수가 44번이나 됐지만 우승은 없었다. 4차 연장에서 닉 테일러(캐나다)에게 22m 끝내기 이글 퍼트를 맞은 2023년 캐나다 오픈이 특히 뼈아팠고, 이달 11일 끝난 PO 1차전 페덱스 세인트주드 챔피언십에서는 세 홀 남기고 단독 선두였는데도 연장에 못 가고 공동 3위로 밀렸었다. 우승 없이 가장 많은 상금(약 3343만 달러)을 번 선수가 바로 플리트우드였다.
‘우승 없이’라는 꼬리표는 이제 옛말이다. 1타 차로 쫓긴 6번 홀(파5)에서 그린 주변 오르막 어프로치 샷을 잘 붙여 2타 차를 만든 플리트우드는 7번 홀(파4) 벙커에서 친 175야드 두 번째 샷으로 버디 기회를 만들어 3타 차로 달아났다. 8번 홀(파4)에서 3m 파 퍼트를 놓치지 않았고 12·13번 홀(이상 파4)에서 송곳 아이언으로 연속 버디를 잡았다.
투어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와 시즌 챔피언에게 주는 페덱스컵을 한꺼번에 든 플리트우드는 “실망스러운 결과로 코스를 빠져나갈 때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그들 덕분에 여기 서 있다”며 “그저 이 투어에서 경쟁하는 게 좋았다. 스코티 셰플러(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처럼 훌륭한 선수들과 레인지에서 연습하고 코스에 나가 경쟁한다는 게 굉장한 행운”이라고 말했다.
올해 메이저 2승 등 5승을 쌓은 세계 랭킹 1위 셰플러와 마스터스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매킬로이처럼 플리트우드도 올해 골프계를 빛낸 주연으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우승을 확정한 플리트우드와 포옹하고는 돌아서면서 눈물을 글썽인 수염 덥수룩한 청년이 눈에 띄었는데 그는 플리트우드의 의붓아들 오스카다. 플리트우드는 2017년 자신의 매니저와 결혼했다. 23세 연상인 클레어다. 플리트우드는 “기꺼이 현장에 와준 오스카, 그리고 집에서 응원한 가족과 얼른 다 같이 모이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페덱스컵 챔피언인 셰플러는 14언더파 공동 4위다. 2타 차 공동 2위까지 갔지만 15번 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적고 밀려났다. 셰플러는 페덱스 랭킹 1위로 최종전에 나섰으나 차등타수제가 올해부터 없어진 탓에 다른 29명과 동등한 조건으로 경기해야 했다.
매킬로이는 6언더파 공동 23위, 임성재는 이븐파 공동 27위로 마감했다. 공동 27위 상금도 36만 7500달러(약 5억 900만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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