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토지에 나무를 심고 사과를 수확한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횡령죄나 재물손괴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A씨는 2014년경 피해자 B 씨 소유의 시흥시 소재 토지에 권한 없이 사과나무 40그루를 심고,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약 240개의 사과를 수확했다. B씨는 A씨에게 해당 토지와 사과나무의 소유자가 자신임을 주장하며 점유 및 사용 중지를 요청했다. A씨는 ‘사과나무를 식재한 사람은 자신이며 수확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A씨를 사과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사과절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하며 사과 횡령 혐의와 사과나무재물손괴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절도 혐의에 대해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점유를 침해해야 한다”며 “이 사건에서는 A씨가 정당한 점유 권한은 없더라도 현실적으로 사과를 점유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횡령 및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횡령·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신임관계가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는 “위탁신임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함이 타당하다”며 “피해자 B씨로부터 토지의 점유 및 사용 중지를 요청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둘 사이에 횡령죄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위탁신임관계가 성립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선 “타인의 재물의 효용을 해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다”며 “사과나무의 천연과실인 사과를 수확하는 것은 사과나무를 본래의 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과를 무단으로 수확했다 하더라도, 이는 피해자가 사과나무의 효용을 누리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며 “사과나무의 효용 자체를 침해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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