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이지만 저작권 인식에 있어서 여전히 후진국입니다. 불합리한 보상을 받거나 저작권을 침해당하는 ‘저작권 사각지대’를 해소해 창작자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겠습니다.”
김호운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문저협) 이사장은 최근 서울 양천구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작자가 정당한 수준의 저작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저작권자의 권리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2000년 설립된 문저협은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한국사진작가협회·한국미술협회·국제PEN한국본부·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한국시인협회·한국작가회의 8개 단체 소속 회원들의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비영리단체다. 소설가인 김 이사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새 이사장으로 추대됐다. 2021년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문예협)와 문저협이 통합된 후 문화체육관광부 관료 출신이 아닌 내부 인사가 이사장에 선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매체가 다양해지고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저작권 시장이 다변화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저작권 시장 규모는 오히려 줄어드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신규 저작권 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지식재산권(IP)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무단으로 창작물을 사용하는 저작권법 위반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표적인 분야로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사교육 시장을 꼽았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확고히 자리잡은 대중음악계와 달리 현재 대형 학원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에서 인용되는 문학 작품의 경우 저작료를 지불하거나 사전에 창작자에게 허락을 구하는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저작권 침해 사례를 적발해도 일회성인 문학 작품 인용의 경우 내용을 삭제하거나 참고 문헌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며 “저작권에 대한 인식 향상과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문화예술계에서도 인공지능(AI) 활용이 불가피하다면서도 AI 창작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창작이나 예술 기능을 AI에 맡겼을 때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문화 생태계가 침범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생성형 AI의 문학작품 학습 목록을 등록하도록 규제한 유럽연합(EU) 사례를 언급하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자체적인 창작 활동이 아닌 AI는 저작권을 가질 수 없다”며 “생성형 AI가 학습했던 모든 문학 자료를 목록화해서 등록하게 하고 그 저작료가 창작자에게 돌아가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저작권 대리 중계 업체의 난립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대리 중계 업체는 창작자와 별도의 신탁계약을 맺고 저작료를 징수하는 일종의 에이전시다. 음악계 위주로 활동하던 관련 업체들이 최근 문학계로 확대되는 추세다. 그는 대리 중계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김 이사장은 “저작권료가 많은 스타 작가에게 서로 높은 요율을 제시하는 업체 간 경쟁으로 저작권 시장이 어지럽혀지고 있다”며 “저작물에 대한 과도한 사용료를 요구해 시장이 점점 황폐해지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저작권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문저협 최대 회원사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K문학이 자생력을 가지려면 문인 중심의 문학에서 독자 중심 문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이사장은 “지역 문학 행사에 가면 문인들만 모여 있는데 이제는 독자 대중과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독자들과 교감하면서 상호이해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문학시장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8년 등단 이후 매년 빠짐없이 소설책과 수필집, 인문학 서적 등을 출간한 김 이사장은 지금껏 50권 가까운 책을 내놓았다. 매년 한 권씩 책을 쓰는 것이 평생 목표라는 그는 현재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김 이사장은 문학을 농사에 비유하며 “토지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부가 아닌 것처럼 농부는 끊임없이 일을 한다”며 “등단 이후 매일같이 하루에 200자 원고지 3장을 써왔는데 칼럼이나 일기라도 끊임없이 써서 사유 영역을 유지·발전시키려고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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