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자본시장 격차가 벌어지면서 자국을 떠나 미국 증시에 입성하려는 유럽 기업들이 늘고 있다.
16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조사 업체 딜로직을 인용해 올 들어 이달 14일까지 영국의 기업공개(IPO) 기업이 6곳에 그쳤다고 밝혔다. 자금 조달 규모는 2억 800만 달러(약 2891억 원)로 30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150억 달러에 육박했던 유럽 IPO 규모도 올 들어 반 토막 났다. 반면 미국은 1년 새 38% 급증해 400억 달러에 달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영미권 투자자의 비중이 큰 홍콩 IPO도 1년 만에 두 배 넘게 불면서 5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유럽 주요 기업들은 유럽이 아닌 뉴욕 증시 입성을 원하고 있다. 올 상반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IPO 신청서를 제출한 클라르나(Klarna)가 대표적이다. 클라르나는 스웨덴의 유망 후불 결제 기업으로 최근 가상자산 도입까지 검토하면서 글로벌 핀테크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유럽에 상장됐지만 무대를 미국으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영국 결제 기업인 와이즈, 스포츠 베팅 기업인 플러터엔터테인먼트는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전하려는 기업들이다. 영국 대형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뉴욕으로 옮기려 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미국 첨단기업들이 증시 랠리를 주도하면서 미국과 유럽 간 자본시장 격차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럽의 고질적인 저성장, 위험 자산보다 저축을 선호하는 성향,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우선주의’ 전략 강화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WSJ는 “스타트업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실리콘밸리나 뉴욕으로 떠난다”며 “유럽에 있으면서 미국의 투자를 받기도 하지만 미국 기업들은 이들이 미국에서 상장하거나 이전하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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