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14일 전당대회 합동 연설회를 방해한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에 대해 가장 약한 징계인 ‘경고’ 조치를 내렸다. 찬탄(탄핵 찬성)파 당권 주자들과 당내 일각에서는 강성 당원들의 눈치를 본 솜방망이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22 전당대회가 ‘전한길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특검의 칼날마저 맞닥뜨린 이중고 속에서 당 지도부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여상원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 씨에 대해 윤리위원들의 다수결 투표로 경고 징계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경고 처분은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라 징계할 수 있는 수위 중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한다. 대구·경북 합동 연설회에서 난동을 부린 전 씨에 대해 비토하는 당내 목소리가 높아졌고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직접 엄정 조치를 요청하면서 최고 수위인 제명을 비롯해 탈당 권유, 당원권 정지 등 중징계 처분이 내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당초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날 논의 과정에서는 경고나 징계 조치가 아닌 ‘주의’ 처분을 내리자는 의견만 나왔다고 여 윤리위원장은 전했다. 여 윤리위원장은 “전 씨가 재발 방지를 약속한 데다 물리적인 폭력도 없었고, 윤리위 징계로 나아가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윤리위는 또 전 씨가 소명 과정에서 스스로 잘못을 반성한 점도 고려했다고 부연했지만 정작 전 씨는 기자들과 만나 “전대에서의 소란은 최고위원 후보가 먼저 (나를) 저격했고 오히려 피해자인데 가해자로 잘못 알려졌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윤리위의 이러한 결정에 당내에서는 즉각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또 다른 분란이 예고됐다. 한 재선 의원은 “오늘 윤리위 결정으로 국민의힘은 ‘극우의 힘’이라는 게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전 씨를 ‘소금을 뿌려 쫓아내도 모자란 존재’라고 칭한 안철수 당 대표 후보는 “한 줌도 안 되는 극단 유튜버와 절연도 못 하면서 어떻게 당을 살리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것인가”라며 “국민의힘 치욕의 날”이라고 꼬집었다. 조경태 후보는 “당 대표가 되면 전 씨를 단칼에 제명하겠다”며 “윤리위원장·윤리위원들의 면모도 철저히 밝혀 당무감사를 통해 책임을 묻겠다”고 핏대를 세웠다.
전당대회 진행 중 특검의 강제수사에 직면한 국민의힘은 중앙당사를 사수하기 위해 전날 밤부터 철야 농성에 돌입한 데 이어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와 의원총회, 마지막 전당대회 합동 연설회를 연이어 열며 특검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송 비대위원장은 특검이 당사를 압수수색하면서 당원 명부 제출을 요구한 데 대해 “500만 당원의 개인정보를 내놓으라는 요구는 국민의힘을 통째로 특검에 넘기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절대로 이런 부당한 영장 집행에 협조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당권 주자들도 가세했다. 김문수 후보는 “특검의 압수수색은 단순한 영장 집행이 아닌 제1야당을 무력화하고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헌법 파괴 행위”라고 했고 장동혁 후보는 “범죄 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당원 명부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총칼을 들고 내려와 대한민국 국가 기밀을 탈탈 털어가겠다는 것과 같은 무도한 짓이고 광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육탄 방어와 여론전 외에 특검 수사를 저지할 뾰족한 해법을 지도부가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당내에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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