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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해 현수막 외국인도 안다

사회부 정다은 기자

올해 4월 1일 안국역 인근 집회 현장에 주차된 탄핵 반대 트럭. 사진=정다은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올해 4월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안국역 인근 탄핵 반대 시위 현장을 챙기다가 퍽 흥미로운 광경을 마주했다. 관광객 반, 시위대 반으로 번잡한 거리 한가운데서 한 백인 부부가 휴대폰을 치켜들고는 길 한복판에 걸린 ‘반탄’ 현수막을 유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화면을 힐끗 보니 정확히는 이미지 번역 앱을 통해 현수막 내용을 영어로 번역 중이었다. 옆으로는 ‘탄핵 반대 이재명 구속’이 적힌 팻말을 전리품마냥 손에 쥔 관광객이 스쳐 지나갔다. 말로만 듣던 ‘다크 투어리즘’의 현장을 시위 한복판에서 목격하다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불과 며칠 후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치적 혼란도 어느 정도 일단락됐지만 다크 투어리즘은 짐작건대 여전히 성업 중일 듯하다. 정체불명의 정치 현수막이 탄핵 이후 독버섯처럼 번지며 거리를 더럽히고 있는 까닭이다. 초기 중국인 혐오와 부정선거 음모론 일색이던 내용은 나날이 진화하더니 이제 ‘가짜 대통령인 줄 미국도 안다’ ‘창문 없는 2평 독방에 전 대통령을 가둔 독재정권’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거짓 주장, 노골적 혐오 표현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통제할 방법은 없다. 해당 현수막들은 모두 정당 명의로 설치되는데 현행법상 정당 현수막은 신고 없이도 15일간 게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일로미래로당’은 현수막 걸기가 사실상 당의 유일한 활동이다. 당 대표는 최근 선관위에 등록되지 않은 개인 계좌로 후원금을 받아온 사실이 탄로 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계속되는 논란에 여당은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등 칼을 빼 들었다. 다만 여당도 원죄가 있다. 3년 전 여야는 정부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신고·허가 없이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양당 모두 ‘현수막 정치’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니즈는 동일했던 셈이다. 물론 현수막이 다크 투어리즘 상품으로 발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그래도 명백히 소탐대실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에 또 법을 개정하게 된다면 다양한 나비효과를 고려해 보다 정교한 해법을 내놓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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