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산 제품에 39%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최대 시계 수출국 스위스가 미국 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3일(현지시간)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외신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는 스위스와의 양자 무역협상이 8월 1일 시한까지 타결되지 못함에 따라 오는 7일부터 스위스산 수입품에 일괄 39%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예고했던 31%보다 8%포인트 높은 수치다.
이번 조치로 스위스 대표 브랜드인 롤렉스·오메가·파텍필립·까르띠에 등 고급 시계 제품의 미국 내 판매가는 최소 20% 이상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제프리스는 “미국 딜러들이 신규 수입 비용을 반영해 일부 모델의 소비자 가격을 이미 10~15% 인상했다”며 “관세가 본격 적용되면 최대 35%까지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스위스 고급 시계 브랜드들은 관세 부과 전부터 가격을 조정해왔다. 명품 업계에 따르면 롤렉스는 지난 7월부터 주요 모델 가격을 약 7% 인상했다.
랜드드웰러 오이스터스틸·화이트골드 40㎜ 제품은 2213만 원에서 2368만 원으로, 데이트저스트 오이스터스틸·화이트골드 36㎜ 제품은 1373만 원에서 1469만 원으로, 데이트저스트 오이스터스틸·에버로즈골드 31㎜ 제품은 1862만 원에서 1992만 원으로 각각 가격이 올랐다. 자매 브랜드 튜더도 같은 날 블랙베이 41㎜ 스틸 모델 가격을 642만 원에서 668만 원으로 약 4% 인상했다.
이처럼 제품 가격 인상에 관세 부담까지 겹쳐 가격 상승이 전망되자 수요는 중고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고급 시계 중고 거래 플랫폼인 크로노24(Chrono24), 와치차트(WatchCharts), 밥스와치(Bob’s Watches) 등은 최근 거래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중고 명품 시계 시장은 전체 시계 유통의 약 30%를 차지하며 명품 카테고리 중 가장 높은 비중”이라고 설명했다.
유진 투투니코프 크로노24 미국 지사장은 “39% 관세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신제품을 상위 1%만 구입 가능한 사치품으로 만들었다”며 “중고 시장은 더 빠르게 반응할 것이고 관세 적용 직후 한 달 내 중고 가격이 최대 10%, 6개월 내 최대 35%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율 관세는 시계 유통 기업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 내 고급 시계 최대 판매업체 중 하나인 영국 상장사 ‘와치스 오브 스위스(Watches of Switzerland Group Plc)’는 관세 발표 직후 주가가 하루 만에 7.3% 하락했다. 이 회사는 롤렉스를 비롯한 다양한 스위스 고급 시계를 미국·영국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 주가가 이미 20% 가까이 빠졌다.
스와치 그룹, 리치몬트 등 주요 시계 제조사들도 미국 매출 감소 우려에 직면했다. 특히 리치몬트는 최근 분기 시계 매출이 7% 감소했고, 스와치는 금값·환율·관세 등 외부 요인으로 마진 축소를 경고한 바 있다. 스위스 시계 연맹(FHS)은 “6월 수출 실적 기준으로 이미 미국·일본·홍콩 등 주요 시장에서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번 조치로 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위스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정부는 성명을 통해 “스위스는 지난해부터 모든 산업재 수입에 대한 자국 내 관세를 철폐했으며 미국의 상호주의 원칙에 반하는 이번 조치는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이 막판까지 진행됐지만 백악관 승인 없이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며 “재협상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영향은 제약산업으로도 번지고 있다. 로슈와 노바티스 등 다국적 제약사들은 미국 내 의약품 공급 차질을 우려하며 관세 면제를 요구하고 있다. 로슈는 “미국에 500억 달러를 투자해 1만2000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라며 의약품 공급 차질 우려를 차단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스위스 정부의 외교적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유럽연합(EU) 27개국과 영국이 각각 15%, 10% 수준 관세를 적용받는 것과 달리 스위스의 39%라는 고율 관세를 맞았기 때문이다. 일부 외신은 지난달 31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품수지 불균형 해소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스위스 대통령에 '격노'해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는 해석도 내놨다.
기 파르믈랭 스위스 경제 장관은 당시 정상 간 통화에 대해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언쟁은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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