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앞에 300만 원이에요.”
29일 고기복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가 베트남 결혼이민자의 남편인 척 행세하며 경기도 용인의 행정사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의 사촌을 계절근로자로 초청해 전남도에서 일하게 하고 싶다”고 말하자 곧바로 수수료 요구가 돌아왔다. 이력과 거주지를 포함한 각종 서류의 위조도 문제없었다. 작업복을 입고 논밭에 가서 찍은 사진만 보내 주면 농업 경력을 담은 이력서를 만들어주겠다는 구체적인 컨설팅이 이어졌다. A 씨는 “우리에게 서류 대행을 맡기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다”며 “오늘 우편으로 접수받은 분량만 50명 치가 넘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법령상 금지된 매개 행위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 사이에서 일상처럼 만연해 있었다. 행정사들은 주로 결혼이민자의 형제자매와 친인척을 계절근로자 수요가 있는 작업장에 연결한다. 이력서를 만든 뒤 그 사람을 쓰겠다는 농장주를 찾으면 근로계약서를 쓰게 된다. 각종 서류들을 만들고 나면 지자체 승인 절차까지 이어진다. 온라인상에서 ‘계절근로’를 검색할 경우 이 같은 업무를 대행해주겠다는 게시물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업무를 전담하는 행정사들은 겉으로는 합법적인 서류 절차의 대행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형적인 이주노동 송출 브로커의 기능을 수행한다고도 본다. 초청 수요와 공급을 직접 연결해주고 필요시 허위 서류도 만들어주며 농장주와 연계를 시도하고 그 대가로 수백만 원의 고액 수수료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다. 행정사들이 이처럼 ‘풀 패키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런 행태가 만연해진 이유는 행정 실무를 수행하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미 브로커들로 대표되는 중간 매개자들이 없으면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졌다. 또 다른 행정사 B 씨는 “우리가 지자체와 출입국·외국인청을 직접 쫓아다니며 업무를 처리한다”면서 “지자체는 워낙 바쁘고 담당자도 적다 보니 서류를 준비해 대행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일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서부터 한국에 이르는 과정의 매 절차마다 층층이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형편이다. 현지 공무원들에게 수십 만원대 뇌물을 주며 한국 입국 준비가 시작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본국 여권을 만드는 출발점에서부터 행정이 지연되는 경우까지 있어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는 이주노동자 송출이나 고용 알선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신설됐다. 각종 문제들을 개선할 국가 차원의 관리·감독 체계와 브로커 처벌 근거가 마련되리라는 기대가 높다. 하지만 피해자들과 인권단체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그간 이주노동자 제도 안에서 중간 매개자 역할을 수행해줄 주체가 없었던 점이 근본적 문제”라면서 “아직 세부 지침이 나오기 전이지만 브로커들을 섣불리 제도권 내 편입시키기라도 한다면 이미 악질적 수법으로 착취를 일삼아온 사람들에게 멍석만 깔아주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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