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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막기식 퇴직금' 40년간 방치…결국 터질 게 터졌다

◆'택시판 국민연금' 파산 위기

복지회 가입자 83%가 61세 이상

신규기사 수혈 막고 적립금도 없어

2000만원 내고 2배 넘게 받기도

골든타임 놓치고 매번 변화 실패

서울시 '가입의무 승인' 책임론도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기사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약 3만 6000명 기사들의 퇴직금을 떠받치는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복지회가 40여 년 만에 파산 위기로 내몰린 것은 고령화 추세를 알면서도 구조 개편을 수십 년간 미뤘기 때문이다. 예견된 미래를 두고도 대응 없이 제도를 방치한 결과가 1000억 원에 가까운 복지금 지급 지연과 구성원들의 대규모 이탈로 이어졌다. 노후소득보장제도의 구조 개편을 놓칠 경우 제도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8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4월 말 기준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복지회원 중 61세 이상의 비중은 82.5%다. 은퇴가 임박한 71세 이상 회원이 30.1%를 차지해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50세 이하(2.6%)보다 11배 이상 많다. 고령화가 심각해 향후 수년간 퇴직자들이 한번에 쏟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구성원들이 늙어가는 동안 복지회를 지탱할 젊은 신규 기사의 수혈은 오랜 기간 제한됐다. 국토교통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개인택시 면허 총량을 일정 수준에서 관리하고 있어서다. 서울시의 경우 2008년부터 개인택시 신규 면허 발급이 중단됐다. 내부 사정에 밝은 조합원 A 씨는 “현재 구조로는 한 달에 약 40억 원씩 적자가 계속 쌓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복지금 제도는 기사들이 돈을 모아 퇴직자에게 지급해줬던 소위 ‘계모임’ 성격에서 유래했다. 이 탓에 1982년 출범 당시부터 조합원들이 낸 돈을 개별 저축하거나 한번에 모아 기금으로 운용하는 적립·예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지나며 복지금은 점차 퇴직금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이런 방식은 개인택시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연령대가 함께 높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2020년대 들어 기존 가입자들의 퇴직 시점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돌려막기’ 구조가 고착화됐다. 납입한 돈보다 많이 되돌려 받는 방식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복지회에 10년 이상 몸담은 조합원들에게는 가점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후 근속연수가 길어질 때마다 납부했던 금액보다도 훨씬 많은 퇴직금을 타가게 됐다. 제도 초창기에 가입해 총액 2000만 원가량을 납입한 사람이 2배인 4000만 원보다도 많은 금액을 받아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A 씨는 “초창기엔 월별 납입금이 2만 원 이하로 적었던 시절이 있어 장기근속자들이 수배 이상을 수령하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했다.



이 문제를 미리 예상하고도 ‘골든타임’을 놓친 점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조합 측은 2019년 복지회 태스크포스(TF)팀까지 구성했지만 이미 때늦은 대응이었다. 당시 장기근속자 가산점 제도의 축소를 비롯해 TF가 내놓은 방안들은 내부 반발에 부딪혀 효과가 미미했다. 복지회원의 기여금 환불을 막아 중도 이탈을 막으려는 미봉책도 오히려 법적 분쟁만 불렀다. 복지금 운용에 숨통을 틔워줄 수익 사업 역시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현재까지 복지회가 운영 중인 수익 사업은 마곡 가스충전소가 사실상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조합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 분위기다. 이달 들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교육 현장에서는 간부들을 상대로 수차례 고성 항의도 벌어졌다. 또 다른 조합원 B 씨는 “할당금을 환불해달라는 개인 단위 소송도 산발적으로 진행 중”이라며 “향후 이런 법적 분쟁이 번져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가운데 조합원들의 관심은 ‘서울시 책임론’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를 상대로 집회나 시위를 벌이겠다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앞서 서울시가 개인택시기사의 복지회 가입을 의무화한 정관 변경을 승인했다는 점이 논란거리다. 실제 서울시는 택시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제도 방향을 조율하며 행정적 개입을 이어왔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도 지자체가 조합의 사업에 대해 관리·감독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한다.

다만 서울시가 당장 복지금 고갈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다. 서울시 측은 “복지회는 조합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사업 중 하나일 뿐이라 관리 감독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복지회와 조합은 별개 존재라 개입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서울시의 개입을 요구하는 방안을 포함한 복지금 제도의 향방은 다음 달 새 이사장 선출 이후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사장 자리는 직전 이사장 차 모 씨가 조합원들로부터 인사 청탁을 들어주며 3억 원어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현재 공석이다. 내부에서는 완전 파산 처리 여부를 두고 입장이 엇갈린다. 파산 시 유동화가 가능한 실물 자산 중에선 300억 원 상당으로 알려진 마곡 가스충전소의 가치가 가장 크다고 평가받는다. 이 밖에 양천지부 건물과 총액 137억 6000만 원 규모인 복지법인 출자금 등도 청산이 가능하다고 전해진다. 조합원 C 씨는 “이번 이사장 선출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결국 복지금 문제”라며 “내부에서는 제도 정비를 주장하는 목소리와 파산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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