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강 대출 규제’라 불리는 6·27 대책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대출 규제 직전만 해도 7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던 서울 집값은 상승세가 둔화하며 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하지만 이 같은 진정세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지 미지수다. 아파트 공급 급감, 금리 인하 등으로 아파트 가격이 언제든 오를 수 있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추가 대출 규제나 획기적인 공급 대책을 내놓지 않는 이상 서울과 경기도 선호 지역의 매매 시장은 관망세 속에서 조금씩 오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대책으로 갭 투자가 막혀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면서 임대차 시장의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실수요자라면 서울 전역에서 매수세가 꺾이고 전월세 가격 상승이 점쳐지는 현재의 상황을 내 집 마련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집값, 상승 폭 감소에도 오름세…관망세로 돌아선 매수자
2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27 규제 발표 후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은 상승 폭이 4주 연속 둔화했다. 특히 서울 아파트값은 규제 발표 직전인 6월 넷째 주(지난달 23일 기준)에 0.43% 올랐지만 이후 0.4%(6월 30일)→0.29%(7월 7일)→0.19%(7월 14일)→0.16%(7월 21일)를 기록해 상승 폭이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6·27 대출 규제를 분기점으로 수도권 매매 시장의 상승세가 진정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대책은 수도권 주택 구입 시 주택담보대출을 6억 원까지만 받을 수 있게 하고 다주택자의 추가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갭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들도 실시됐다. 주택담보대출 차주에 대한 6개월 내 실거주 의무 부여, 주택 구입 시 세입자의 전세대출금으로 매매 대금을 치르는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규제의 영향으로 그동안 서울 집값 상승을 견인했던 한강벨트 매매 시장의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6월 23일 0.98% 올랐던 마포구 아파트값은 이달 21일 0.11% 오르는 데 그쳤으며 동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구) 상승률도 같은 기간 0.82%에서 0.25%로 낮아졌다. 올 들어 아파트값이 10% 넘게 오른 경기 과천도 7월 넷째 주 상승률이 0.38%로 전주(0.39%)보다 둔화했다. 서울 외곽 지역의 ‘갭 메우기’도 아직까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금천구와 구로구, 관악구는 이달 21일 각각 0.05%, 0.11%, 0.13% 오르는 데 그쳤다.
가격 상승 폭이 감소한 데 이어 거래량도 줄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의 6월 아파트 매매 거래 건수는 총 1만 1665건(24일 신고 기준)이지만 7월 현재까지 거래된 건수는 1941건에 불과하다. 7월 매매 계약 신고 기한이 다음 달 말까지로 한 달 넘게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해도 감소세가 가파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상승 폭 축소와 거래량 감소를 보이고 있는 매매 시장에 대해 하락세 전환이 아닌 관망세 돌입이라고 평가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WM영업전략부 부동산 연구위원은 “강남권은 호가가 역대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매수자 입장에서는 대출 규제가 발표된 상황에서 구입하기엔 부담이 있다”며 “반면 서울 외곽과 경기도 핵심지들은 현재 매도가가 전 고점보다 20% 정도 낮은 경우가 많고 주택담보대출 제한으로 인한 영향도 덜하기 때문에 상승 거래는 꾸준히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도 “서울과 경기도 선호 지역의 아파트들은 중장기 측면에서 여전히 상승 국면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고 있고 금리도 떨어지고 있어 유동성이 아파트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서울 ‘금관구(금천·관악·구로)’ 등 외곽 지역의 신축 아파트나 투자 가치가 있는 재건축 아파트들은 이번 규제로 인한 가격 하락 압박이 덜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부동산 중개 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이번 규제 이후 서울의 10억 원 초과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규제 이전(5월 1일~6월 27일)보다 3.6% 올랐다. 서울 10억 원 초과 거래의 가격 상승률을 아파트 연식별로 보면 준공 30년 초과 구축이 7.3%로 가장 높았고 5년 이하 신축(3.77%), 준공 11~30년(2.73%), 준공 6~10년(0.93%) 등이 뒤를 이었다.
빨라지는 ‘전세의 월세화’…"전세가 올라 임차인 불안 커질 것"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로 갭 투자가 사실상 봉쇄되면서 전세 시장은 매매 시장보다 더 큰 부침을 겪고 있다. 집주인들이 전세 보증금 전액을 대출 없이 조달할 수 있는 세입자를 찾기가 힘들어 월세나 보증부 월세(반전세)로 매물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의 월세 매물은 이달 23일 기준 1만 9449건으로 대책이 발표된 지난달 27일(1만 8796건)보다 3.5% 증가했다. 반면 전세 매물은 같은 기간 2만 4855건에서 2만 4343건으로 2% 줄었다.
특히 전세 수요가 비교적 약한 비(非)아파트와 구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은 더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책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한도 축소가 포함된 데다 21일부터는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기존 90%에서 80%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전방위적인 전세대출 규제 강화에 따른 전세 매물 감소가 과연 임대차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서울 공급 절벽’이라는 전제가 유지되는 한 전월세를 통틀어 임대차 시장의 불안은 커질 것으로 진단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이 2023년부터 지속 감소한 결과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은 이미 상당히 오른 상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해 4.6% 오른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1.16%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 4043가구로 지난해 하반기 대비 29.1%나 감소할 예정이다. 남 연구위원은 “임차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전세 수요가 월세로 옮겨가면 결국은 월세가격도 높아지게 된다”며 “전월세 시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공급이 확실하게 늘지 않으면 서로 상승 압력을 주고받으며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도 “대출 규제 이전부터 임대차 시장은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 압박을 안고 있어 이 경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고가 전세 위주인 서울 강남권 아파트에서는 전세가격이 꺾이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초구 ‘메이플자이’가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59㎡의 전세 평균 가격은 지난달 12억 1000만 원이었는데 이달 11억 9000만 원으로 하락했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가 신규 분양 단지에도 그대로 적용돼 급하게 세입자를 찾으려는 매물들이 출현하며 전세가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다음 대책’에 쏠린 눈…"실수요자는 ‘내 집 마련’ 기회 삼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가 규제나 공급 대책을 내놓기 전까지 매매 시장의 숨 고르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출 규제의 영향이 덜한 중저가 지역의 주택 매수에 관심이 있는 실수요자라면 매수세가 위축된 지금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 교수는 “가격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매수 시점을 실기하지 않도록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며 “자금 여력을 잘 살펴 시장에 나오는 급매물이나 임의 경매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6·27 대책으로 하반기 금융권 가계대출 총량(정책대출 제외)이 당초 계획 대비 50% 줄어드는 만큼 타이밍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