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고 우방인 일본에 최대 35% 상호관세를 때릴 수 있다고 경고한 것에 놀란 우리 정부가 막판 미국의 소위 ‘성실 협상국’ 지위를 얻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약 일주일 만인 주말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참여에 전향적인 입장을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3일 정부의 한 관계자는 “상호관세 유예 시점을 고려하면 협상 시간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며 “여 본부장 방미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소식통도 “미국과 다른 나라의 협상 동향, 남은 협상 시한 등을 고려할 때 한미간 고위급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연방공휴일인 독립기념일(4일)이 금요일이라 4~6일까지 연휴지만 연휴가 지나면 7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방미가 예정돼 있고 바로 상호관세 유예 종료일(8일)이 이어진다. 이에 여 본부장은 주말을 이용해 방미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이 일본과 같이 미국의 타깃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선의를 재차 강조해 성실협상국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버릇이 없어진 국가’라고 지칭하고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최대 3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일본이 지난 4월 2일 받아든 관세인 24%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여 본부장 방미가 성사된다면 물리적 시간 부족 등으로 4차 기술협의보다는 우리의 포괄적인 제안서를 제시하며 협상 의지를 전달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우선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를 적극 추진하는 분위기가 포착된다. 알래스카 LNG프로젝트는 2030년까지 연간 2000만톤의 LNG를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이미 대만 국영석유회사(CPC)가 지난 3월 알래스카 가스개발공사와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했고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에 따르면 CPC는 연간 600만톤의 LNG를 구매할 계획이다. 태국 역시 미국과 LOI를 체결했으며, 태국 정부는 연간 300~500만톤의 수입을 검토 중이다. 총 2000만톤 중 최대 1100만톤의 수요가 이미 채워진 셈이다. 우리 정부는 다른 나라의 참여로 2000만톤 한도를 채우면 LNG 참여의 협상카드로서의 값어치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고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최근 워싱턴특파원단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이 직접 특정 프로젝트를 거론하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에너지 프로젝트는 알래스카 프로젝트 하나”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이번 미국과 베트남 간 무역합의에서는 베트남산 제품의 미국 상호 관세를 46%에서 20%로 낮추고 미국산 제품의 관세는 0%로 하기로 했다. 한국의 경우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실효 관세율이 0%대이기 때문에 조선, 방산 협력방안 등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우리 협상팀에 자국 업계에서 요구하는 안을 거르지 않고 제시하는 등 고강도의 청구서를 내민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도 지난달 24~26일 워싱턴에서 열린 3차 한미 기술협의에서 우리의 제안을 제시했지만 미국 측의 눈높이에는 차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이번에 진전된 제안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다른 나라 협상에 준하는 수준의 우리의 안을 제시하는 것 가지고는 미국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선에서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성실 협상국 지위를 얻어 상호관세 유예를 받고 7월 8일 이후까지 미국과 통상협상을 이어간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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