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범죄 현장에서 신종 마약을 탐지해낼 수 있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개발에 착수했다. 일반 마약보다 환각성이 훨씬 강한 신종 마약류가 클럽·텔레그램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자 칼을 빼든 것이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대 산학협력단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라만 스펙트럼 기반 마약류 예측 알고리즘 및 시스템 개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라만 스펙트럼이란 빛을 쬈을 때 그 빛이 물질에 부딪혀 바뀐 파장 변화 패턴을 의미한다. 지문처럼 각 물질마다 고유한 형태를 띠기 때문에 마약 성분을 빠르게 식별하는 데 활용된다. 검사 과정에서 대상 물질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도 유용하다.
경찰은 라만 장비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검사 대상 물질에 마약류 성분이 포함돼 있을 경우 자동으로 파악·분류하는 AI 알고리즘 기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예정이다. 만약 기존 DB와 유사하지 않은 스펙트럼 패턴이 발견된다면 이는 신종·합성 마약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추가 대응한다.
최종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경찰이 현재 개발 중인 휴대용 라만 분광기와 연동될 예정이다. 현장에서 분광기를 활용해 마약 의심 물질을 검사하면 결과 값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마약 여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현장 도입은 이르면 2027년부터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대 측은 용역 제안서에서 “기존 소프트웨어는 외산 장비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DB에 종속돼 국내에서 주로 유통되는 마약에 대한 탐지 능력이 비교적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마약 탐지 알고리즘 개발에 나선 것은 신종 마약류가 최근 몇 년 새 사회 곳곳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마약류는 대마·필로폰 등 전통적으로 유통되던 마약류보다 환각성이 훨씬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액상 전자담배 형태로 유통이 늘어나면서 논란이 된 합성 대마류의 경우 환각성이 일반 대마의 최대 수십 배에 달한다.
실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0년 11.8%에 불과했던 신종 마약류 비율은 지난해 34.9%까지 뛰었다. 합성 대마류가 15.2%로 가장 많았고 케타민 10.1%, 엑스터시 4.2%, 반합성 대마 3.0%, 코카인 1.6% 등 순이었다.
경찰은 마약 사범이 최근 2년 연속 2만 명대를 기록할 정도로 급증하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각종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전용 간이 시약기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소변이 아닌 타액을 채취하는 방식인 타액용 간이 시약기 1200여 개를 전국 경찰서에 지급해 교통사고 등 단속 현장에서 활용하도록 하기도 했다.
첨단기술 연구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시작해 2026년까지 3년간 총 35억 원을 투입할 예정인 ‘치안·관세 현장 맞춤형 마약 탐지·검사 시스템 개발’이 대표적이다. 불법 마약류 소지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첨단 장비와 간질액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마약을 검출하는 간이 검사 패치를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찰청은 “마약 단속·수사 분야 투입 인력 확대 외에 고도화된 마약 탐지·검사 업무 지원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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