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승하 후 40여 일 지난 1450년 5월 21일 좌의정 황보인이 입궁해 빈소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대나무로 만든 책에 금가루로 글자를 새기고 귀한 옥 장식을 붙여 만든 ‘옥책’이다. 조선 왕실과 조정은 임금 등의 공덕을 기리는 이름인 ‘존호’ ‘묘호’를 지을 때 그 내용을 옥책에 기록해 바치고는 했다. 옥책을 펴든 황보인은 “삼가 옥책을 받들어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라는 존시와 세종이라는 묘호를 올립니다”라고 고했다. 이 가운데 존시(존호)의 내용은 ‘학식이 뛰어나고 군사에 밝으며 성인처럼 인자한 데다가 효의 도리를 깨친 위대한 임금’으로 풀이된다. 존호의 경우 왕이 책봉될 때 혹은 재위 기간 중에 바쳐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후에 올려지는 묘호와 달리 존호가 임금 생전에 지어진 것은 군왕 스스로 존호에 담긴 내용대로 선정을 베풀어 달라는 취지에서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대통령은 제왕적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문민정부 이후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이 같은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치 안정, 경제성장, 법치 확립, 자주국방을 이루려면 강력한 리더십의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좋은 정치를 펴는 데 써달라고 당부하는 차원에서 국민들이 존호를 지어준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민심을 경청해 국론을 모으고, 야당과 협치해 정치를 안정시키며 법치를 바로 세우고, 경제를 풍요롭게 하면서 나라의 안보를 튼튼히 지켜달라’는 취지의 당부를 담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건국 이래 13명에 이르는 전임 대통령 중 이 같은 존호를 온전히 받을 만한 인물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재임 중 초심을 잃고 이념적 도그마에 빠지거나 측근 정치에 기대었다가 민심을 잃고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명한 비교정치학자인 후안 린츠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제의 위험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대통령제는 승자 독식 규칙에 따라 운영되므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민주적 정치를 갈등적 제로섬게임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대선에서 당선인과 2위 후보 간 득표 차이가 매우 근소하거나, 의회의 다수가 대통령과 반대되는 정치 노선을 추구할 때 대통령과 다수당 중 누가 더 국민을 대변하는지를 놓고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군의 개입 유혹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마치 우리의 2022년 대선 이후를 정확히 예견한 듯한 대목이다.
린츠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푸는 방안으로 포용적 정책을 꼽았다. 반대 진영도 껴안아 대통령 스스로 ‘모든 국민의 대통령(president of all the people)’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이 자신의 진영에서 극단주의 세력을 배제하고, 선거에서 패배한 경쟁 진영에 입각을 제안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당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새 정부의 첫 장관 후보자로 기업인, 비명계 의원, 보수 진영 출신 정치인 등을 발탁하는 포용적 실용 인선을 단행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법 독주 움직임을 보이는 여당과 정부 관료들을 향해 코드 맞추기를 강요하는 국정기획위원회의 모습을 보면 이 대통령의 ‘포용적 정치’가 과연 지속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게 된다. 최근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과거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해 “표적 사정의 성격이 농후한 사건”이라고 주장한 대목은 새 정부의 법치주의 존중 여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촉발했다.
518년 조선 역사에서 27명의 임금이 평균 19년간 재위에 올랐지만 존호에 맞는 선정을 편 성군은 극소수다. 오늘날 그보다 짧은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나 홀로’ 치적을 쌓기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강력한 리더십을 오남용해 독단에 빠졌던 전임자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론 분열을 막고 여야 협치를 통해 일관성 있게 중도 실용 정치를 지속해야 성공할 수 있다. 만약 국민들로부터 옥책에 존호를 담아 받게 된다면 어떤 당부가 담겨 있을지 스스로 돌아보면서 극단의 정치를 배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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