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에 사는 임 모(30) 씨는 최근 평소처럼 길가를 지나다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근처에서 낮게 날던 커다란 까마귀 두 마리가 갑자기 행인의 머리를 쪼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신고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방차가 도착해 행인을 구출해냈다. 임 씨는 “까마귀들이 가까이서 계속 맴돌며 쫓아다니니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며 “나중에 다시 와서 보니 까마귀 주의 안내판이 븥어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까마귀 등 조류로부터 습격을 당했다는 경험담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26일 서울대에 따르면 대학은 물까치 주요 서식지인 인문대 부근 오솔길을 지난달 26일부터 통제하고 있다. 학교 측은 “물까치 번식기에 사람을 침입자로 오해해 공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가급적 우회해 주시고 불가피할 경우 우산을 사용한 다음 반대편에 반납해 달라”고 공지했다.
까마귀 역시 번식기를 맞아 예민해지면서 행인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소방서에 ‘까마귀들이 행인을 공격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구급대가 현장에 출동했다. 서울 구로소방서에도 ‘구로역 인근에서 까마귀 4~5마리가 사람을 공격하고 있다’는 신고가 지난달 29일 접수되기도 했다.
실제로 조류에 습격당했다는 내용의 119 신고도 늘고 있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68건이었던 조류 공격 관련 신고 건수가 지난해 74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접수된 신고가 벌써 52건에 달한다.
서울 내 녹지가 다수 조성되면서 새들이 도심 한복판까지 서식지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큰부리까마귀의 도심 출현 비율은 지난 20년 전에는 30%대에 불과했지만, 최근 들어 70~80%까지 늘기도 했다.
아직까진 지자체나 소방당국 측에서 마땅히 대처할 방법은 없다. 물까치는 아예 유해조수로 지정돼 있지 않고, 까마귀는 유해조수이지만 농작물·과수·전신주 피해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포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새끼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인 만큼 번식기에는 서식지를 피해서 가는 등 충돌을 피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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