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도입한 재건축 패스트트랙(자문방식) 제도로 강남과 강북 간 집값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수익성이 좋고 재건축 의지가 강한 조합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동남·서남권 인기 단지를 중심으로 정비구역으로 속속 지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여의도·목동 등에 핵심 재건축 단지가 몰린 상황에서 지원책이 활발해질수록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서울경제신문이 5월 1일 기준으로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재건축 사업지 74개 단지를 권역별로 분석한 결과 77%인 57개가 한강 이남 소재로 조사됐다.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이 30개로 가장 많고, 서남권(양천·영등포·동작·강서·구로·금천·관악구)이 27개로 집계됐다. 동북권(성동·광진·노원·도봉·강북·성북·동대문·중랑구) 12개, 도심권(용산·종로·중구) 4개, 서북권(마포·서대문·은평구) 1개 등이 뒤를 이었다.
2021년 9월 도입된 신통기획은 민간 주도 재개발‧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기획안 입안을 돕는 제도다. 시가 계획방향을 제시하면 조합은 시 의견을 반영해 용역 등 후속 조치를 거쳐 기획안을 만든다. 사전 협의를 거치는 만큼 심의 보류나 반려가 줄어들고, 그 결과 입안 후 정비구역 지정까지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2년 단축할 수 있다.
서울시는 2023년 초 기존 신통기획에 더해 패스트트랙 제도를 추가로 도입했다. 주민제안이나 지구단위계획이 이미 지정된 지역은 기획설계 용역 발주 없이 시의 자문만 거치면 계획수립 기간을 단축해주는 내용이다. 국토교통부가 2023년 1월 5일 재건축 안전진단을 완화하면서 재건축 수요가 활발해질 것을 예상한 대비책이었다. 실제로 신통기획 재건축 74개 단지 중 패스트트랙이 55건을 차지할 만큼 패스트트랙 요청이 쇄도했다.
문제는 패스트트랙이 한강 이남 지역에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선정된 단지는 △서남권(24개) △동남권(18개) △동북권(9개) △도심권(3개) △서북권(1개) 등으로 한강 이남이 60%를 차지한다. 패스트트랙 단지들은 최초 자문 이후 평균 11개월 만에 정비계획안을 통과시키면서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선호 지역이면서 수익성이 높은 강남권이나 개발 기대감이 큰 여의도·목동을 중심으로 패스트트랙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대어인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가 패스트트랙으로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것이 대표적이다. 잠실 5단지는 2005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난관을 겪은 후 패스트트랙으로 정비계획안을 통과시킨 첫 사례다. 목동 신시가지 14개 단지 중 6단지를 제외한 13개 단지가 패스트트랙을 활용해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자치구의 한 정비사업 담당자는 “토지소유자 30% 동의만 받으면 패스트트랙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견만 모이면 사업이 진행되는 반강제성이 있다”며 “강북은 수익성이 낮지만 강남처럼 수익성이 좋은 지역에서는 패스트트랙으로 군불만 때주면 그다음부터는 조합원들 스스로 사업에 속도를 내기 때문에 활용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패스트트랙으로 재건축에 속도가 붙었지만 강남과 강북 간 집값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잠실 5단지 전용면적 76.49㎡는 올해 1월 31억 700만 원(최고가 기준)에 매매된 뒤 5월에 7억 원 가까이 오른 37억 6500만 원에 손바뀜됐다. 목동 신시가지 ‘대장’으로 꼽히는 7단지 전용 53.88㎡ 매매가도 1월 15억 8000만 원에서 6월 20억 5000만 원으로 급등했다.
서울시가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에 속도를 낼수록 양극화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강남 재건축 최대어인 대치 은마가 패스트트랙을 거쳐 하반기 도계위 심의를 앞두고 있고, 서울시가 연내 목동 14개 단지 정비계획 지정 목표를 세우는 등 앞으로 진행될 사업들도 한강 이남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여의도 재건축 단지인 광장 아파트도 패스트트랙을 통해 정비계획 변경안 공람 공고를 진행했다. 박석 서울시의원(국민의힘·도봉3)은 “강북권 재건축 단지는 분담금이 크고 비례율은 낮아 주민 갈등이 크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강북권 재건축 수익성을 높이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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