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폐막한 세계 최대 바이오 행사인 바이오USA의 '소리 없는 승자'는 중국이었다. 중국의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의 2년 연속 불참 소식이 전해지면서 올해는 중국의 존재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행사가 개막하자 현실은 그 반대였다. 바이오 안보·글로벌 공급망·인공지능(AI) 등을 다룬 세션 곳곳에서 '중국'이 끊이지 않고 등장했다. 글로벌 바이오 산업 전 분야에 걸친 중국의 영향력은 강력해 보였다. 우시바이오는 현장에 부스만 차리지 않았을 뿐 실무진들을 파견해 1대1 파트너링에 나서며 실속을 챙겼다. 더욱이 지난해와 달리 중국 국제상공회의소와 진퀀텀헬스케어, 히트젠 등 총 23개 기업과 기관이 공동으로 중국관을 운영하며 전 세계 참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미국 보건복지부(HHS) 산하 전략대비대응국(ASPR) 수석보좌관인 마크 오닐은 기조강연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높은 원료의약품(API) 의존도를 지적하며 "미국에서 원료의약품 핵심 원료를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다. 육군 대령 출신인 그가 기조연설자로 나서 직접적으로 중국을 언급한 것은 바이오 산업이 더이상 국가 안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증거다. 행사 현장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방문해 업계 최고경영자(CEO) 등과 비공개 대담을 나눈 것에 대해서는 현지 참가자들 사이에서 "미국이 중국의 추격으로 바이오산업 경쟁력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은 빅파마 복제약 생산기지에서 혁신 신약 개발 국가로 변신에 성공했다. 미국 금융회사 스티펠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빅파마가 체결한 기술도입 계약 중 중국 업체와 이뤄진 계약은 3분의 1에 달한다. 2020년 10%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1%를 기록하며 4년 새 3배 넘게 급증했다. 계약 규모도 작지 않다. 올 상반기 K바이오의 가장 큰 기술수출 계약인 에이비엘바이오의 GSK 딜이 4조 원 대라면 중국의 3S바이오와 화이자 딜은 8조 원으로 차이가 2배에 달한다.
K바이오는 바이오USA에 매년 참가 기업 수와 파트너링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 한국은 빅파마가 기술도입을 할 만한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2세대 바이오텍 선두주자인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기자와 만나 "빅파마들이 신약을 빠른 속도로 개발하기 위해 기술 도입 전략을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며 "중국은 2~3상의 후기 임상에 있는 파이프라인이 많지만 한국은 초기 임상이 대부분이라 밀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도 바이오USA에서 "한국 바이오 사업개발(BD) 담당자는 발표를 잘 하지만 기밀유지계약(CDA)을 맺고 실사를 시작하면 데이터가 빈약해 실망스럽다”며 “중국 피치는 투박하지만 CDA를 맺고 보는 데이터가 탄탄하다”고 말했다.
올해 바이오USA에서 중국관의 재등장으로 정치와 산업이 분리되고 있다는 진단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정치적으로는 대립하지만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한국 바이오 기업은 기술력만으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수혜를 기다리기보다는 자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알테오젠(196170)·리가켐바이오(141080)의 플랫폼 기술이 대표적이다. 빅딜 논의는 바이오USA 이후부터 시작이다. 경쟁력을 입증하는 K바이오의 저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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