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의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해 한의사사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23일 성명을 통해 "국토교통부가 신임 장차관을 임명하기 전 보험사의 숙원사업에 대한 입법예고를 기습 강행했다"며 "졸속 입법예고를 철회하라"고 밝혔다.
앞서 국토부는 상해등급 12~14급에 해당하는 경상 교통사고 환자가 8주 이상 치료를 받을 경우 치료 개시 후 7주 이내에 상해의 정도 및 치료 경과에 관한 자료를 보험사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를 두고 한의협은 "겉보기에는 합리화 조치로 포장됐지만 실상은 보험사의 비용 절감을 최우선으로 한 졸속 행정"이며 "국민의 치료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반의료적 정책 개악"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해 신임 장·차관이 임명되지도 않았고 7월 중 이해당사자인 한의계와 협의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입법예고를 강행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의협은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보험사는 이른바 '셀프 심사'를 진행하고 환자는 행정 전쟁을 치르게 돼 공정성이 실종될 것으로 우려했다. 환자는 치료 연장을 위해 정해진 기한 내에 자료를 준비해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야 하는데, 보험사는 해당 자료를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진료비 지급 여부를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셀프 심사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란 이유다.
이들은 "자동차 보험 진료수가에 관한 기준에 따라 의료기관과 전문심사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역할을 분담해 관리해 오던 의료적 판단 체계가 파괴되고,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의제기 절차 또한 매우 부실해 결국은 환자가 행정적, 시간적, 정신적 부담을 오롯이 떠안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입법예고가 통과될 경우 보험사는 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고 환자는 치료를 포기하거나 자동차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받도록 유도되는 현실이 초래될 것"이라며 "이러한 제도 개악은 자동차보험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고 공공보험인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떠넘기는 전형적인 책임 회피"라고 규탄했다.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 건강보험 재정을 악용해 민간 보험사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구조가 마련되면서 공익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이들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나 공론화 과정 없이 입법을 강행하는 행태에 한의사협회는 강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토교통부는 새정부 신임 장 · 차관이 부재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진행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또 "새 정부에서 임명된 장·차관의 정상적인 업무지시와 함께 의료계 전문가, 소비자단체들과의 상식적인 논의를 통해 교통사고 환자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 마련을 논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피해자 중심의 의료 접근성과 국민 건강권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진료심사 체계를 유지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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