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나 폭행 등 강력범죄로 저질렀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65세 이상 고령 수형자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죄를 저지른 전체 수형자 6명 가운데 1명이 노인일 정도다. 전문가들은 의학의 발달로 79~90년대 과거와 달리 노인의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데다, 빈곤 등 문제까지 겹치면서 이들의 이른바 ‘분노’ 범죄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23일 법무부가 발간한 ‘2025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수형자는 3483명으로 2017년(1797명)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 노인 수형자는 2019년 2052명으로 2000명선을 돌파했다. 4년 뒤인 2023년(3092명)을 기록, 3000명선도 넘었다.
65세 이상 노인이 교도소에 수감되는 죄 가운데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건 살인과 폭행, 성폭행 등이다. 살인죄의 경우 2017년만 해도 346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88명으로 급증했다. 살인죄로 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전체 수형자가 지난해 3083명이라는 점에서 6명 가운데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셈이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수감되는 노인도 2017년만 해도 121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46명으로 급증했다. 성폭력을 저질렀다가 교도소에 갇히게 되는 노인도 지난해 480명으로 2017년(244명)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 과거 젊은 사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강력 범죄에서 노인들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21일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60대 A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A씨는 지난 19일 인천시 부평구 한 오피스텔 현관 앞에서 아내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가정 폭력 등의 이유로 취해진 법원의 접근 금지 명령이 종료된 지 일주일 만이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접근 금지 기간이 끝나고 찾아갔는데,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고, 무시를 당해 화가 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남 진주시에 거주하는 60대 B씨는 지난 11일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지난 달 14일 한 식당에서 카드 잔액 부족을 이유로 음식을 주지 않자, 종업원 목을 밀치고 뺨을 때리는 등 행패를 부렸다. 같은 달 27일 남강 둔치에서도 윷놀이를 구경하다가 소란을 피우고, 본인을 말리는 주민을 폭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65세 이상 노인들의 강력 범죄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게 현재 이들이 처한 불안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학의 발달과 식(食)문화 개선으로 평균 수명이 크게 증가한 노인들의 체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데도, 60세가 넘으면 사회에서 밀려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충분치 못한 노후 설계로 인한 노년기 빈곤 문제가 이들의 자책, 불만, 불안 등 감정으로 이어지면서 노인들의 ‘분노 범죄’가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요즘 노인들은 노쇠하다고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꾸준한 건강 관리로 상당한 근력을 가지고 있다”며 “건강·영양 상태가 좋아지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갈등 등 문제에서 공격력을 행사할 수 있는 노인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준비되지 않은 노후 준비에 대한 좌절감이나 분노, 불만 등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는 부분도 연관이 있다”며 “주변에서 한 말이나 행동이 자극이 돼 생계비 등 경제적 압박이 폭력 행위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강력 범죄는 완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노인들은 이 같은 범행이 가능할 만큼 건강하다”며 “폭행이나 살인과 함께 사기 등 경제 범죄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노인 빈곤 등 고령화 사회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정부가 고령화 사회에 대해 범죄와 노동 구조 문제를 따로 고민했다면 지금부터는 달라져야 한다”며 “고령·노동·치안 문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통합적으로 분석해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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