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순천향대 인근의 한 다세대 원룸에 사는 20대 방 모 씨는 전세 계약을 마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1년 반 넘게 발이 묶였다. “건물을 팔아서라도 갚아 주겠다”고 말해왔던 임대인은 이제 연락조차 두절됐다. 방 씨는 “매달 대출이자를 내며 이사도 미루고 있다”면서 “심리적 압박과 장거리 이동의 시간·비용 부담까지 겹쳐 매일이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가 지방 청년들의 생활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세 계약 종료 이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특히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반복되는 모양새다. 저가의 다세대·원룸에 몰린 청년층 피해는 수도권보다도 깊은 구조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임대인이 계약 만료 이후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사고액은 6859억 원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 대비 70.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사고 건수도 6191건에서 3629건으로 41.4% 줄어들었다. 통계상 전세금 반환 사고는 2023년과 지난해 각각 연간 4조 5000억 원 규모로 발생해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전환됐다. 이는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과 전담 수사기구 설치로 대형 조직형 범죄가 줄어든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는 보증보험에 가입된 경우에 한정된 수치다. 보험에 들지 못해 통계에서 제외된 지방 소형 주택 세입자들의 피해는 여전히 수면 아래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실제 방 씨의 사례는 하나의 단면일 뿐 전국 곳곳에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1억 원가량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경북 구미시에 사는 30대 최 모 씨는 “전세 피해가 이제 막 시작된 지역이라 공무원도 잘 모를 정도로 행정 대응이 미흡하다”면서 “가장 편안해야 할 집이 오히려 스트레스의 공간이 됐다”고 토로했다. 경북 경산시에 거주하는 30대 석 모 씨는 “대출이자 상환 압박과 그로 인한 생활비 부담 속에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면서 “맞벌이와 투잡·스리잡까지 병행하며 가족과 함께할 시간조차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액·지방·청년층 피해가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에서 고도의 수법으로 벌어지는 조직형 전세 사기와 달리 지방의 다세대 원룸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소액 피해는 사실상 보호 장치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2030세대처럼 경제적 여건이 취약한 세입자는 법적 대응 여력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미반환의 고의성을 증명하기 어려워 사기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대처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계약이 끝난 뒤에도 대출이자를 부담하며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세대가 부지기수다.
지역 중소도시 부동산 시장 자체가 위축된 현실도 피해를 키우고 있다. 집주인들이 후속 임차인을 받아 이전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는 관행 때문이다. 실제 각지 부동산에서는 소형 전월세 매물이 나가지 않는 데다 경매를 통한 매각도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지방 주택의 매매 거래량은 약 11만 건을 기록해 직전 년도 대비 1000여 건이 감소했다.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 이전인 2021년 동월과 비교하면 약 40.2%가 줄어들며 사실상 반토막난 수치다. 전반적인 거래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전세에서 월세로의 급격한 이동 현상도 감지된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 회복 없이는 전세금 미반환 피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특히 매매·임대 수요가 위축된 지역일수록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자발적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 전세금 미반환은 사기뿐 아니라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생기는 비고의적 사례도 많다”며 “특히 시장 침체가 심한 지방에서 피해가 커지기 쉬운 만큼 유형별 사례를 분류해 제도 보완이 필요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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