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충분한 의사표현 가능성이 있고, 퇴소 이후에도 복지서비스 수준이 유지됐다면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에 따른 거주시설 퇴소 조치는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영민)는 사회복지법인 A가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권고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지난 4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법인은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에 따라 2014년부터 운영하던 수용형 장애인시설들을 순차적으로 폐쇄하고, 지원주택을 통한 자립 지원을 실시해왔다. 이 과정에서 뇌병변·지체·지적·중복장애 등 중증장애를 가진 거주자 B씨가 2021년 3월 해당 시설을 퇴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7월 A법인이 퇴소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B씨를 퇴소시켰다며 자기결정권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A법인은 해당 권고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씨와 수년간 생활했던 사회복지사들은 ‘B씨는 행동을 통해 좋고 싫음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했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며 “법정에 출석한 증인 C씨도 같은 취지로 B씨는 약간의 음성언어와 이에 결부된 대체적 의사소통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비교적 분명히 표현하는 사람이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씨에게는 기본적인 인지능력이 있었고, 친밀감을 느끼거나 신뢰관계가 형성된 사람과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며 “B씨가 퇴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거나, 퇴소에 관한 자신의 진정한 의사를 표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A법인은 퇴소 이후 B씨가 지원받을 복지서비스나 자원을 충분히 준비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렸다”며 “지원주택을 통해 B씨에게 제공된 복지서비스가 이전 시설에 비해 열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설을 나온 이후 ‘B씨의 의사소통 능력이나 활동 능력이 향상됐다’는 관찰 결과 등에 비춰볼 때, 이번 퇴소가 B씨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보호조치가 미흡해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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