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품 그룹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의 계열사가 일본 기업에 특화된 450억엔(약 43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새로 만들었다. LVMH가 미국 이외 특정 국가를 겨냥한 펀드를 설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 속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LVMH가 출자한 미국 투자회사 L 캐터턴(L Catterton)은 최근 일본 기업 전용 투자펀드를 신설했다. 해외 기관투자자와 일본 내 보험회사, 연기금 등에서 자금을 모았으며, 화장품과 식품, 소매업 등 일본 중견·중소기업 10여 곳에 수년에 걸쳐 투자할 예정이다.
LVMH가 미국 외 국가를 대상으로 한 독립 펀드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VMH는 2000년대 이후 투자 펀드 활동을 본격화했는데, 자사 브랜드의 판매뿐만 아니라 펀드 투자 수익을 통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운 L 캐터턴은 전 세계적으로 5조엔(약 48조원) 이상을 운용하는 회사다. 소비재와 소비자 서비스 기업에 특화돼 있으며 일본에서는 안경 전문점 온데이즈 등에 투자한 바 있다. 기업의 경영에 직접 관여해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루이비통을 보유한 LVMH의 브랜딩 노하우도 활용한다. 닛케이는 “일본은 기술력이나 디자인 역량이 우수한 기업이 많고, 일본산 제품 및 서비스는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도 인기가 높다”며 LVMH의 투자 펀드 설립 배경을 분석했다.
일본에 대한 투자는 LVMH 뿐만이 아니다. 미국 조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1~5월 세계 투자펀드들의 일본 기업 인수합병(M&A) 금액은 243억달러(약 33조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실적(194억 달러)를 넘어선 수치다. 글로벌 M&A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 수준이던 일본의 점유율은 올해 1~5월 4%까지 상승했다. 5월만 놓고 보면, 세계 M&A 중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은 10% 이상을 차지했다.
닛케이는 이 같은 투자 열기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 미중 갈등 심화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투자처를 재조정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일본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로 부각됐다는 것이다. 엔화 약세로 인한 일본 기업들의 할인 효과도 글로벌 자금의 입장에선 긍정적인 투자 포인트다. 여기에 최근 일본 기업들이 자본 효율성 강화에 주력하면서 유망 회사의 주식이 매물로 나오고 있고, 중견·중소기업이 잇따라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 자금 수요가 커졌다.
주요 글로벌 투자펀드들도 일본 투자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최대 투자펀드 블랙스톤은 올해 일본 투자 담당 인력을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칼라일그룹도 40% 증원해 35명 수준의 일본 전담 조직을 구축한다. 칼라일은 지난해 4300억엔 규모의 일본 전용 펀드를 출범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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