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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본 한국문화원의 ‘불로문’ 판석이 1장 아닌 3장인 이유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제작 수송 과정의 편의 위해 돌을 세토막 나눴다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오해 빌미를 일본에 줄 수도

경복궁 동·서십자각 미복원 등 국내 문제 적지않아

서울 지하철 경복궁역에 있는 ‘불로문’ 모습. 창덕궁의 원본을 모방한 것이다. 최수문기자




경복궁역 불로문의 설명문이다. ‘한 장의 큰 판석’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최수문기자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플랫폼을 나와서 지하 역사를 걷다 보면 석문(石門·돌문)이 하나 있다. 전에 어디서 본듯한 데…. 바로 창덕궁 후원에 있는 그 돌문 ‘불로문(不老門)’ 모양이다. 아래 설명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한 장의 큰 판석으로 만든 석문을 통과하면 만수무강과 불로장생 한다고 하는 창덕궁의 불로문을 모방 제작하였음.”

여기서 ‘한 장의 큰 판석’이라는 것은 즉 커다란 바위 하나를 깎아서 만든 문이라는 의미다. 지금이야 어떤 돌도 기계로 쉽게 다듬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창덕궁 후원에 ‘원작 불로문’이 있는데 보면 볼 수록 경이롭다. 전통시대 석공들이 커다란 바위에서 시작해 문 모양으로 망치와 정으로 쪼았을 테고 중간에 만약에 자그마한 실수라도 해 금이라도 갔으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을 테니 그 정성과 긴장감이 어떠했을까 상상이 어렵다. (참고로 지금은 돌 문틀만 있고 나무 문짝은 없는데, 실제로는 문틀에 문짝을 달았던 돌쩌귀(경첩) 흔적이 있다. 나무 문짝은 중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모방품들은 돌문 문틀만 복사해 놓고 있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원본 ‘불로문’ 모습. 하나의 바위로 문틀을 만든 석공의 정성이 경이롭기만 하다. 사진 제공=국가유산청


원본이 창덕궁 후원 깊숙이 숨겨져 있다보니, 일반인들이 보다 가까이 이를 만나기 위해 설치한 것이 경복궁역의 ‘모방 불로문’이다. 갑자기 불로문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최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일본 도쿄 방문 때 함께 둘러본 주일본 한국문화원의 ‘불로문’ 때문이다.

주일본 한국문화원은 건물 4층 야외에 ‘한국전통양식을 살린 옥상정원’이라는 내용으로 하늘정원을 근사하게 만들어 놓았다. 한쪽에는 불로문도 있다. 불로문의 비례가 원본과 달라 다소 이상하게 보이는데 그야 어쨌든 더한 문제가 있다. 돌문의 위 부분에 잘린 흔적이 있는 것이다. 문화원 측의 설명은 이렇다. 한국에서 만들어서 선박 편으로 실어왔는데 운반이 불편해 세 토막으로 잘랐고 지금 것은 그것을 이어놓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한 장의 큰 판석’이 아닌 불로문이 불로문인가. 짝퉁도 원본과 비슷해야 짝퉁 대접을 받는다.

현재 주일본 한국문화원 누리집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창덕궁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돌문을 그대로 하늘정원의 입구에 재현하였습니다. 이 문을 지나가는 사람은 무병장수한다고 전해지니 하늘정원을 방문하시면 꼭 불로문을 지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경복궁역 모조품에도 있는 ‘한 장의 큰 판석으로 만든’이라는 설명 문구가 없다. 당연하다. 이건 한 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일본 한국문화원 하늘정원에 있는 모조품 ‘불로문’ 모습. 원본과는 다소 다른 느낌인데 특히 윗부분에 잘린 흔적이 있다. 돌 3개를 모아 놓은 셈이다. 사진 제공=주일본 한국문화원


주일본 한국문화원 ‘불로문’의 윗부분 모습. 잘린 모습이 선명하다. 사진 제공=문체부


주일본 한국문화원의 하늘정원 전경. 왼쪽 위 사진 가운데 ‘불로문’이 있다. 사진 제공=주일본 한국문화원


혹시 그동안 이런 상태의 불로문에 대해 누군가 문제 제기가 없느냐고 물어봤다. 필자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그대로인 이유는 예산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 만들려면 비용이 다시 든다는 것이다. 어쨌든 잘못된 문화유산(복제품)이 버젓이 일본 중심지에 있고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원래 그런 모양인 줄 알고 있을 듯하다. 정말 아쉽다.

전통 계승은 우리 스스로가 잘 할 일이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경복궁역을 나오면 경복궁 광화문을 중심으로 남쪽 궁성 담 양쪽 끝으로 보이는(보여야 하는) 망루 ‘동십자각(東十字閣)’과 ‘서십자각(西十字閣)’이 있다. 하지만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도로를 확장한다며 서십자각을 아예 없애고(1923년) 동십자각은 궁성 담장에서 떼어내 섬처럼 만들었다(1929년). 해방이 됐지만 이들 훼손된 망루의 신세는 백년여 동안 그대로다.



복원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경복궁 인근 지역 교통을 막는다는 이유로 실행은 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공개한 경복궁 장기 복원 계획에도 동·서십자각 복원은 포함돼 있지 않다. 국가유산청은 2045년까지 과거 19세기 중반 고종 때 중건된 전체 전각 대비 41%를 복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의 눈에도 쉽게 띄는 동·서십자각은 생략된 상태다.

서울 경복궁 전경. 광화문을 사이에 두고 궁성 담장과 연결돼 왼쪽(서쪽)과 오른쪽(동쪽)에 각각 서십자각과 동십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서십자각은 아예 없어졌고 동십자각은 담과 잘려 섬처럼 돼 있다. 최수문기자


경복궁 동십자각 현재 모습. 원래 이어져 있던 경복궁 담장과 끊어져 현재 섬처럼 돼 있다. 최수문기자


경복궁 서십자각 터의 현재 모습. 서십자각은 아예 없어지고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최수문기자


훼손되기 전의 경복궁 서십자각(왼쪽)과 동십자각 모습. 사진 제공=국가유산청


경복궁의 광화문 월대가 지난 2023년 복원 완료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광화문의 동서 날개인 두 십자각 망루가 복원되지 않으면 경복궁은 여전히 날개 꺾인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경복궁을 내국인이나, 특히 외국인에게 홍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궁궐이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쯔진청) 등 외국 궁궐에 훨씬 못 미친다는 ‘비하 논란’을 우리 스스로가 자초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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