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골프는 참 독특한 회사다. 미국 기업이지만 미국 기업 같지 않다. 20~30년 된 직원들이 숱하고 모든 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직원이 있다. 제품에 대한 마음도 진심이다. 마케팅보다는 기술 개발을 우선하며 신뢰와 믿음을 강조한다. 흔히 동양의 것으로 여겼던 가치들이 이 회사를 떠받치는 근본이다.
5월 경기 김포 소재 칼스텐 코리아에서 만난 존 K 솔하임 최고경영자(CEO)는 “창업자인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가르침”이라며 “할아버지가 첫 번째로 만든 1A 퍼터의 청명한 ‘핑’ 사운드는 내겐 일종의 노스탤지어”라고 회상했다. 그는 오너 가문의 일원이지만 CEO 자리를 ‘당연하게’ 물려받은 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고, 대학에서는 공학을 전공했으며 핑에 입사한 뒤에는 개발팀을 이끌었다. 일본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는 괄목할 성장을 이끌었다. 칼스텐 코리아는 핑골프 본사가 한국에 설립한 골프클럽 조립 공장이다.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 이번에 온 주요 목적은 뭔가.
“베트남에 세일즈 미팅이 있다. 한국을 방문한 지도 1년이 넘어서 찾게 됐다. 일본도 둘러볼 참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칼스텐 코리아가 직접 제품을 공급하게 됐다. 나름대로 기대가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골프시장이다. 미국과 일본과 동등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다. 조립 공장 설립으로 한국 골퍼들에게도 최신 제품과 커스텀(주문) 클럽을 최대한 빨리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주문 후 48시간 이내 발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밖의 서비스도 더 강화하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삼양인터내셔날이 핑을 알리면서 판매를 해왔다. 칼스텐 코리아 설립 후 어떤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나.
“한국은 커스텀 피팅에서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 조금 뒤처져 있었다. 조립 라인을 한국에 구축함으로써 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빠른 배송이 가능해지면 핑의 판매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특히 피팅 시장을 좀 더 키우려고 한다.”
핑 일본 지사장(2011~2014)으로 재직하면서 빼어난 성과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핑의 일본 내 시장점유율은 1%였다. 하지만 그만둘 때는 5%까지 성장했다. 지금은 17% 정도다. 특히 올해 G440 드라이버만 놓고 보면 40% 정도를 찍고 있다.”
핑이 일본에서 크게 성장한 비결 중 하나가 일본과 미국 골퍼의 차이점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한 것이었다. 솔하임은 과거 인터뷰에서 “미국 골퍼들은 매장에 가면 클럽을 집어 든 후 왜글을 하는데, 일본 골퍼는 클럽을 집어 든 후 얼굴로 가져간다”고 했다. 일본 골퍼가 클럽의 마감 상태 등에 민감하다는 걸 파악한 것이다. 핑은 이후 제품의 디자인과 색, 마무리 상태 등에 더욱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한국 골퍼의 특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그렇지 않아도 베트남에서 가질 세일즈 미팅에서 이와 관련해 자세한 얘기를 나눌 예정이다. 특히 일본에서의 판매 방식과 소비자들이 어떤 절차로 클럽을 구매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도 접목할 예정이다.”
베트남 세일즈 미팅 참석 후 돌아온 김진호 삼양인터내셔날 부사장이 관련 내용을 전했다. 김 부사장은 “핑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피팅인데, 이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일본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현재 일본의 경우 핑 거래처 절반 이상이 피팅 숍이다. 한국은 그 비중이 10% 미만이다. 앞으로 이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점인 피팅에 장기적 투자… 벙커 웨지는 ‘라이프 체인저’”
한국에서는 최근 제로 토크 퍼터나 미니 드라이버가 인기다. 핑은 어떤가.
“제로 토크 퍼터도 하나의 유행이다. 우리는 하반기에 페이스가 샤프트보다 앞에 위치한 ‘온셋’ 퍼터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게 더 나은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구조적으로도 더 낫다. 미니 드라이버의 경우에는 투어 선수들에게 프로토타입을 공급하고 있고 시판용은 하반기에 나올 것이다.”
새로 나온 ‘벙커 웨지’가 특이하더라. 미국 내 반응은 어떤가.
“소매점에서는 출시되자마자 모두 판매됐다. G440 드라이버를 ‘게임 체인저’라고 한다면 벙커 웨지는 ‘라이프 체인저’라고 표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벙커 플레이가 정말 안 좋았는데 이번 벙커 웨지를 사용한 후 자신감이 붙으면서 내 골프 라이프가 바뀌었다. 출시 한 달 정도 됐는데 시장 반응이 아주 뜨겁다.”
핑이 올 상반기에 선보인 벙커(BunkR) 웨지는 로프트 각도 64도, 바운스 각도는 14.5로 설계됐다. 페이스가 충분히 누워있고, 바운스 각도가 큰 덕분에 페이스를 굳이 오픈할 필요가 없다. 특별한 조작 없이도 벙커 탈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설명이다.
한국 골프시장은 지난해부터 침체했다. 글로벌 골프 시장은 상황은 어떤가.
“미국과 일본, 유럽 마켓은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다만 아시아 국가에서는 성장세가 둔화됐다. 한국만이 아니고 그보다 작은 마켓인 베트남이나 대만도 비슷한 양상이다.”
개인적인 영역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창업자인 칼스텐 솔하임은 위대한 혁신가였다. 할아버지의 DNA를 얼마나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나.
“나도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우리 아이들 중에서도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도 디자인, 기계, 엔지니어 분야다.”
아버지인 존 A 솔하임은 당신에 대해 ‘할아버지의 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평소 기타도 가끔 친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첫 작품이었던 1A 퍼터의 ‘핑’ 소리를 자주 들었을 텐데 지금 그 소리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
“내게 ‘핑’ 사운드는 일종의 노스탤지어다.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매년 회사 내에서 1A 퍼터 콘테스트를 하는데 올해는 내가 우승했다.(웃음) 요즘 나오는 최신 퍼터가 좀 더 편하긴 하지만 그런 대회를 통해서 예전의 감성이나 추억을 느끼는 것도 재밌다.”
고등학교 시절 방학 때면 공장에서 일했다고 하던데, 할아버지한테 배운 삶의 지혜가 있다면.
“할아버지는 굉장히 일을 열심히 하는 ‘하드 워커’였다. 내가 16세 때 할아버지는 80세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도 성공을 위해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몸소 가르쳐주셨다. 그 다음에 배운 게 있다면 신앙심이다. 할아버지는 크리스천(기독교인)이셨는데 나 역시 두터운 믿음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은 집안일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할아버지는 큰 회사를 운영하는 유명한 분이셨지만 집에서는 항상 할머니를 도와주는 가정적인 사람이셨다. 이 세 가지가 할아버지가 내게 주신 삶의 가르침이다.”
수염이 잘 어울린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수염을 길렀다. 특히 ‘염소수염’은 할아버지의 상징이었다. 혹시 수염을 기를 생각이 있나.
“할아버지는 인도에서 난 자동차 사고(1971년) 때문에 턱에 흉터가 남았는데 그걸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 아버지는 그냥 기르셨다. 난 아직은 수염을 기를 계획은 없다. 아마 핼러윈 때나 수염을 붙이지 않을까.(웃음)”
2022년 CEO로 취임했다. 본인만의 색깔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어떤 걸 변화시켰나.
“일단은 회사가 2대에 걸쳐 성공적으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회사를 망치지 않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웃음) 그 다음에 조직적으로는 기술 개발과 마케팅 개선 등에 중점을 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성공이 일종의 압박이나 짐으로 작용하진 않았나.
“내가 회사를 이어받는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끼지만 그걸 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난 그걸 선물이라고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어떤 경영 철학을 물려주셨나.
“엔지니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항상 작은 것에도 소홀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어떤 물건을 개발할 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디테일에 집중해야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예를 들어 내가 엔지니어로 일할 때 너트를 잘못 만지면 아버지는 옆에서 보시다가 바로바로 지적하시곤 했다. 지금은 그런 작은 일들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고, 그런 디테일들이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노력이라는 것을 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런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엔지니어로서 디테일 강조…집에선 아내 도와 설거지”
X(옛 트위터) 프로필을 보니 ‘네 아이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라고 했더라. 스스로 남편이자 아빠로서 평가를 한다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아빠로서 충실하려 노력하는 측면에서는 우수한 점수를 주고 싶다. 아이들이 잘 성장하면 내가 아빠로서 잘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가끔 아이들이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내 잘못인가라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아이 넷 중 셋은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고 지금 집에는 한 명만 있는데, 일단 집에서는 아내가 CEO다. 그렇기 때문에 설거지 등을 하면서 아내를 도와줘야 한다. 최근에는 집 거실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방학에 집에 돌아올 때 더 좋은 집을 보여주고 싶다.”
핑은 회사 구성원들까지도 패밀리로 여긴다고 들었다. 핑만의 가족친화적인 정책에는 어떤 게 있을까.
“핑은 당연히 직원을 가족으로 여긴다. 언제나 직원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결정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우리의 복지 프로그램이나 의료보험은 굉장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 보너스 프로그램에서도 회사가 잘되면 직원도 잘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예로 매년 40명 정도를 마스터스 대회장에 보내준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마스터스 로고 옷을 입었다.
“올해도 직원들과 다녀왔는데, 이건 작년 대회 때 샀던 거다.(웃음)”
창업자는 ‘직급에 따라 급여는 달라도 보너스는 모든 직원에게 동등하게 지급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책은 지금도 유효한가.
“그렇다. 매 분기 보너스가 있는데, 그건 모든 직원들에게 동일하게 지급된다. 다만 또 다른 성과급이 있는데 그건 직급마다 조금 다를 수 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60년 이상 회사를 잘 이끌어 왔다. 당신이 그리는 핑의 30년 미래의 모습은 어떤가.
“나 역시 혁신을 계속 이어 나가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30년 후에는 누가 회사를 운영할지는 모르겠다. 내 자녀이거나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일은 가장 회사를 잘 운영할 사람을 선택하는 거다.”
미래의 후계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일단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회사와 구성원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이를 통해 우리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 골퍼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우리는 항상 최고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핑은 피팅에 특별히 강점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다. 클럽을 선택하기 전에 꼭 한 번 피팅을 받아보길 바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