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0년물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며 시장 불안을 키우는 가운데 일본·독일 등 주요국 장기채 금리까지 뛰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악화 우려에다 각국의 재정 확장 정책이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마저 외면하는 모습이다.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전날 일본 국채 30년물 수익률이 장중 3.185%, 40년물이 3.635%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20년물 금리도 2000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2.575%까지 상승했다. 영국 30년물도 한 달 반 만에 5.5%대로 치솟았고 독일 30년물 국채 역시 3.1%대 후반까지 올랐다.
주된 배경으로는 각국의 재정 확장 정책에 따른 국가부채 급증이 지목된다. 일본은 감세와 관련한 재정 확대 논쟁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당을 중심으로 소비세 감세 주장이 터져 나온 가운데 ‘반대’ 입장을 당론으로 정한 집권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1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 재정 상황이 그리스보다도 나쁘다”며 감세 주장에 선을 그었지만 시장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정부 부처 간 채무 포함)은 지난해 기준 236.7%로 세계 최고치다. 올해 말에는 250%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 팽창에 대한 우려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국방비 증액 논의가 봇물을 이루면서 재정 부담 우려가 커진 탓이다. 특히 독일은 향후 10년간 인프라 투자와 국방비에 투입할 추가 재정 지출이 1조 유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6개월마다 발간하는 금융 시스템 안정성 보고서에서 “국방비 팽창이 역내 채권 수익률을 불규칙하게 상승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이 국방비 조달을 위해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유럽 시장에 너무 많은 채권이 풀려 금리가 오르게 되고 유럽 전체 채권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일본 국채시장 동향도 유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일본의 채권 수익률 상승이 유럽 시장에서 자금을 굴리는 일본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를 촉발할 수 있어서다.
닛케이는 “미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 일본과 유럽 등으로 돈이 이동해 해당 지역 금리가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일본과 유럽에서도 인플레이션과 재정 악화 우려가 동시에 확산되면서 자금이 갈 곳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상승이 지속될 경우 기업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파산이 속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량의 국채를 보유한 금융기관들의 경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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