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강원도 인제스피디움(3.908km)에서는 내구 레이스의 계보를 잇는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 2라운드가 열린 가운데, 국내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정상 무대라 할 수 있는 슈퍼레이스 ‘토요타 가주 레이싱 6000 클래스’에 출전하고 있는 김동은(오네 레이싱)이 바로 아버지, 인제스피디움 '스포츠 TF' 김정수 단장과 함께 인제 레이싱 소속으로 두 시간 내구 레이스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레이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부자의 출전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 2라운드가 끝나고 김정수·김동은 부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먼저 부자가 함께 내구 레이스를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김정수(이하 김): 이번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 2라운드 출전을 준비하며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먼저 ‘아들과 함께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목표와 함께 업무적으로도 ‘인제 마스터즈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다른 대회보다 많은 미디어 관계자들과 국내의 다른 모터스포츠 관계자들 역시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덕분에 ‘업무적인 목표’는 달성한 것 같지만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는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경기 내내 잘 해보고 싶은 욕심은 많았지만 여러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김동은(이하 동): 사실 아버지가 내게 이야기를 할 때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역시 ‘언제 일정 비어둬라’라는 말 외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경기장에 오게 됐다.
사실 경기에서 탈 레이스카도 제네시스 쿠페 레이스카라는 것, 그리고 그 차량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토요일 아침에 알게 될 정도로 ‘소통’이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참여하게 되어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 같고, 또 아버지의 바람도 있었던 만큼 열심히 탄 것 같다.
게다가 최근 어버이날이었는데 제가 딱히 해드린 것이 없어서 이번 대회라도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나섰다. 다행히 아버지, 어머니 모두 좋아하시고, 또 미디어 관계자 분들도 함께 응원하고 관심을 가져주신 만큼 열심히 한 것 같다.
Q 오늘 함께 달린 레이스카에 대한 소감은 어떨까?
동: 어제 인제스피디움에 와서 레이스카, 그리고 그 상태 및 이력 등을 알 수 있었다. 과거 팀 106이 사용했던 레이스카고 ‘더 레이서’ 프로그램에서 가수 김연우 님이 탄 차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반대로 7년 동안 아무런 주행 및 관리가 되지 않았던 레이스카라는 것을 듣고 다소 걱정이 많았다. 사실 주행을 하면서 레이스카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고, 현장에서 대처했다고는 하지만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다행히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었다.
성적이나 결과, 기록 등을 떠나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레이스카를 타니까 이 레이스카를 거쳐간 많은 이들의 존재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팀 106의 노력과 더 레이서의 흔적, 그런 것들이 더욱 특별한 경험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Q 내구 레이스 플랫폼에 대해 선수의 견해가 궁금하다.
동: 사실 많은 모터스포츠 팬 분들이나 관계자 분들이 ‘주행 시간이 늘어나면 레이싱 드라이버들이 힘들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상황은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토요타 가주 레이싱 6000 클래스의 상위권 경쟁처럼 무척 타이트한 경쟁이 펼쳐질 때에는 20분 만 달리더라도 체력이 소진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지속성’에 초점을 맞춰 주행을 할 때에는 말 그대로 ‘연료’가 바닥 날 때까지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
물론 총 주행 시간이 12시간, 24시간 이렇게 넘어가며 누적된 피로로 인해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도한 수준의 내구 레이스 규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레이싱 드라이버들은 충분히 대응하고, 체력을 안배하면서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마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두 시간의 내구 레이스는 날씨가 바뀌고, 아버지의 스핀 등 여러 이슈가 있긴 했지만 ‘추월하는 레이스 전략’보다는 상황에 맞춰 안정적인 레이스를 운영하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내 스스로의 체력적인 부담, 정신적인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
Q 인제스피디움이 ‘내구 레이스’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 같다. 앞으로의 청사진이 궁금하다.
김: 아직 인제스피디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에 어떤 기여나 영향을 주진 않은 상태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승우 대표께서 내구 레이스에 대한 의지, 그리고 중장기적인 성장에 대한 청사진에 대한 확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승우 대표와의 지속적인 회의와 협의, 그리고 해외의 다양한 내구 레이스에 대한 분석 등을 통해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부여하고 싶다. 그리고 가까운 시점부터 ‘변화’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해외의 다른 내구 레이스처럼 ‘주행 거리 및 시간’을 늘리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 아직 팀과 선수들이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고려할 부분은 많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은 ‘세계적인 내구 레이스 수준의 규격’을 갖추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일본에 있는 ‘슈퍼 다이큐 시리즈’를 벤치마킹하고 싶다. 슈퍼 다이큐 시리즈는 개별적인 튜닝 샵 단위의 팀부터 프로 선수를 앞세운 상위 클래스까지 다양한 팀과 선수들이 참여하는 ‘입문 및 성장, 그리고 성과를 내는 대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컨셉을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에도 적용해 내구 레이스 입문자들은 물론이고 보다 체계화된 팀들과 선수들도 출전해서 함께 참여하며 같이 즐길 수 있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구상할 수 있는 그런 대회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Q 경기 중 아버지가 스핀한 순간이 있었다. 그 때의 소감이 궁금하다.
동: 과거와 비교한다면 아버지의 기량은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이 줄어든 모습’이라 생각한다.(웃음)
그러나 레이스카의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주행이었고, 중간에 김재정 선수가 추격하다 보니 페이스를 끌어 올리신 것 같다. 그러다가 스핀을 한 것이라 생각하는 데 여전히 ‘예전의 기량’이 부분적으로 남은 것 같았다.
사실 아버지도 그렇고, 김의수 감독도 그렇고 스핀 한 후에 빠르게 복귀하는 것에 대해 엄청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다. 이번의 스핀에서도 그러한 ‘성향과 습관’ 같은 것들이 보였고 실제 김의수 감독도 과거 비슷한 모습을 많이 연출하기도 했다.
다만 그건 옛날 방식, 기술이라 생각한다. 요새는 가벼운 조작으로도 쉽게 원하는 방향으로 스핀 턴을 할 수 있는데….
Q 김정수 단장은 과거부터 ‘베테랑 외국인 선수’를 적극적으로 영입해왔다. 그 배경이 궁금했다.
김: 맞다. 외국인, 특히 일본에서 우수한 기량을 과시한 선수들을 영입, 국내 무대에 출전시켰다. 이러한 선택에는 두 개의 이유가 있었다. 먼저 성적을 내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김동은 선수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선수가 성장하고 발전을 할 때에는 아버지나 감독의 존재도 중요하겠지만 ‘함께 달리는 선수’의 영향도 크기 때문에, 동은이가 ‘보고 배울 만한 선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일본인 선수들과 함께 많은 레이스를 하게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동은이가 많이 배우고 또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수 육성은 말 그대로 ‘체계적인 시스템과 교육’이 필요하기에 이를 구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과거 우리는 모두 경험을 기반으로 육성되었고 육성했다.
그러나 다행히 최근에는 국내의 몇몇 선수들이 ‘체계화된 교육 커리큘럼’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Q 오랜 만에 인제 레이싱을 만날 수 있었다. 인제 레이싱의 부활 가능성은 있을까?
김: 솔직히 팀 운영을 중단하고 슈퍼레이스에 입사한 후로는 그 동안 ‘왜 그렇게 힘들게 레이싱 팀을 운영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레이싱팀 운영’에 대해 무척 회의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인제스피디움에 합류하며 또 생각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내가 하고 싶다는 접근이 아니라 환경적으로, 그리고 업무적으로 ‘필요성’ 역시 일부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부활한다’ 혹은 ‘아니다’라고 말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그저 ‘가능성은 있다’ 정도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 그런데 뒤에 어머니 표정이 좋지 않으신 것 같다.(웃음)
Q 만약 팀을 새로 꾸린다면 어떤 선수를 영입하고 싶은가?
김: 지금 당장 ‘어떤 선수가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별로 없다. 그 보다도 ‘내가 원하는 성향의 선수’를 데려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언제나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선수를 선호한다. 과거 황진우 선수를 영입할 때 그런 캐릭터를 느꼈기 때문에 영입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여성 카트 선수로 공격적인 주행을 보여줬던 송예림 선수가 인상적이기도 했다.
(김동은 선수에 대한 질문에) 동은이의 경우 ‘팀의 환경’과 시스템의 완성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이 구축되지 않았을 때에는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은 선수다.
다른 팀으로 이적한다고 했을 때 이런 부분이 걱정되기도 했고, 실제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기도 했다.
Q 아버지, 그리고 ‘감독과 단장’인 김정수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동: 어릴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경기장에 다녔는데 그 시절부터 아버지는 ‘슈퍼맨’ 같은 분이었다. 늘 포디엄에 올랐고,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에 내 성장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자 관계였기 때문에 ‘감정적인 갈등’도 많았던 것 같다.
아버지와 함께 하던 시간을 보내고 다른 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는 ‘김정수 감독, 단장’ 등의 역량을 더 느꼈던 것 같다. 정말 커리어가 쌓이면서 아버지가 레이스의 전략이나 팀의 운영 부분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췄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발견하고 있다.
비록 팀의 자금력이 부족해 어려운 시절도 있었고, 그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도 있지만 ‘김정수 감독’이라는 감독이 무척 뛰어나다는 생각은 변치 않을 것 같다. 아마 지금도 레이스 전략 및 운영 등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 시절의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지 않더라도 많은 경험과 지식,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의 지속적인 발전이나 ‘국내 모터스포츠의 성장’에 도움을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의 평가가 궁금하다는 질문에)아버지로는 무척 별로인 분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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