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조업과 상품 판매 분야에서 둔화 그림자가 짙어졌다. 글로벌 관세 전쟁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추진 강도와 수사가 부드러워지고 있지만 미국 경제의 일부 영역에서는 관세에 따른 부정적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 부분 업황과 지출 향방은 여전히 안개 속이지만 월가와 연준에서는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13일(현지 시간) 미국 상무부는 미국의 4월 소매판매가 7241억 달러로 전월 대비 0.1% 증가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는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에는 부합하지만 전월 1.7%의 급등 이후 둔화 추세가 뚜렷했다. 소매 판매는 주로 전체 소비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상품 판매 실적을 주로 집계하는 통계다.
소매 판매 13개 항목 중 7개 품목이 감소했다. 관세의 영향을 받는 스포츠 용품·서점(-2.5%), 잡화점(-2.1%), 의류(-0.4%), 자동차·부품업체(-0.1%) 등에서 소비가 감소했다. 전월 관세 이전 소비를 늘렸다가 조정 국면에 접어든 양상이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업종을 제외한 근원 소매판매(통제그룹)는 전월 대비 -0.2%를 기록해 예상치(0.3%)를 하회했다. 근원 소매판매는 음식 서비스, 자동차, 건축자재, 주유소 판매액을 제외한 지표로 국내총생산(GDP) 산출에 반영돼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지표다.
이마저도 관세 효과가 본격화 되기 전 소비자들이 서둘러 구매에 나선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팬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버 앨런은 보고서에서 “소매업체들의 판매량은 지난달 새로운 관세 부과에 따른 가격 상승을 예상하며 소비자들의 구매가 급증한 데 힘 입은 결과일 수 있다”며 “이런 추세는 지속될 수 없으며 이는 5월과 6월 지출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라고 관측했다.
미국의 산업 생산도 횡보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이날 발표한 4월 산업생산은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해 변동률이 0.0%를 기록했다. 0.1% 상승을 예상한 시장의 전망치에 미치지 못했다. 산업생산은 미국 내 제조업과 광업, 전기나 가스 등 유틸리티 서비스를 포함하는 산업 계 생산활동을 측정한 지표다. 세부 항목 가운데 유틸리티 생산이 추운 날씨에 힘입어 3.3% 상승한 것을 제외하면 제조업(-0.4%)과 광업(-0.3%)은 모두 3월보다 생산량이 줄었다. BMO캐피탈 마켓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살 과티에리는 “일련의 4월 경제 지표는 보호 무역주의에서 비롯된 불확실성과 공급 중단이 경제의 추진력을 떨어뜨리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0.5%로 하락했지만 이 역시 뜯어보면 경제에 좋은 소식은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4월 PPI는 관세의 영향이 아직 본격화하기 전인데다, 이번 감소는 결국 일부 드러나는 관세 인상 부담을 거래처에 넘기지 않고 자체 흡수하고 있다는 신호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익률을 낮추는 요인이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사무엘 톰스는 2018년 세탁기 관세 부과 이후 소비자 가격 상승까지 3개월이 걸렸다는 점을 언급하며 “현재 업체들은 관세에 다른 추가 비용을 거래처에 전가하지 않고 있다”며 “업체들의 이익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지 판단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4월 금융시장의 혼란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의 확전을 자제하고 나서면서 전문가들이 보는 침체 위험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다만 월가 주요 인사들은 여전히 침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JP모건 글로벌마켓콘퍼런스에서 “피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경기 침체는 지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리스크”라며 “침체 가능성은 거의 반반 수준”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부담이 본격화될 지도 관건이다. 월마트의 최고경영자(CEO)인 더그 맥밀런은 실적 발표에서 “우리는 관세로 인한 비용 압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관세율이 낮은 수준으로 시행되더라도 관세 인상은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 자산운용의 수석 경제 전략가인 엘렌 젠트너는 이와 관련 “4월 물가 상승률 둔화는 관세의 영향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위안이 되지 않는다”며 “중국과의 무역 갈등 완화에도 불구하고 무역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관세가 경제 지표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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